사라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활물화 活物畵’
어릴 적 나에겐 사물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대화 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었다. 사물함에 종이학, 장난감, 문구류 등을 넣고 닫은 뒤 빠르게 문을 열었다. 사물은 그대로 있었지만 문을 닫았을 땐 분명 움직이고 있었을 거라 믿었다. 나중에 그것이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서 ‘물활론(Hylozoism, 物活論)적 사고’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만이 아닌 모두가 어릴 적엔 초능력자였던 것이다.
성인이 된 뒤, 한 때 친구들이었던 사물들을 길가에서 마주쳤다. 단독주택들이 빌라들로 재개발되면서 안에 있던 것들이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무엇이든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면 다르게 바뀐다. 집 안에서는 그 용도와 쓰임이 명확했으나 길가의 사물들은 의미가 달랐다. 그것들은 폐기된 것이었지만, 왠지 살기위해 밖으로 뛰쳐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거기서 사물의 죽음을 보았다. 경험했던 한 시절의 마지막이었다. 그것은 언젠가 있을 우리의 멸종과도 가까웠다.
사라지는 사물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잊어버렸던 초능력을 다시 떠올렸다. 사물이 본디 어떤 쓰임새인지와는 상관없이 재조합하고 새로운 역할과 생명력을 부여했다. 그렇게 태어난 작업들은 사물의 윤회이며, 언제나 끝은 다른 시작임을 내포하고 있다.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기존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와 삶과 죽음이란 주제는 같지만, 내가 사물에서 발견한 것은 허영과 허무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정지된 삶, 죽은 생명이란 뜻의 정물(靜物, Still-Life)과 달리 나의 사물들은 움직이고 변화하며 진화한다. 즉,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활물(活物)’인 것이다.
나는 무용해져가는 서로 다른 아날로그 사물들을 연결하고 재탄생시킨다. 그것이 아날로그를 마지막으로 경험한 밀레리얼세대의 작가로써 그릴 수 있는 정물화이며,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인터넷 등과 같은 기술의 발달로 사물과 사물, 물질과 생명의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제시될 수 있는 필요한 작업이란 생각을 한다.
개인전 (총10회)
2023.04 활물화 活物畵 (아트스페이스H, 서울)
2022.11 이상한 나라의 사물들 (갤러리다온, 서울)
2022.06 브레멘 사물 음악대 (스페이스 엄, 서울)
2020.10 사물에 빠지다 Falling in Things (스페이스 엄, 서울)
그 외
2인전
2022.09 함께 그리는 무지개 (Chung M art company, 서울)
2021.09 우산이 되어줄게 (아트스페이스H, 서울)
2021.03 Love Dot (갤러리 다온, 서울)
2019.03 처음이자 시작 (디애소미 갤러리, 서울)
단체전 및 아트페어 (60여회)
작품소장
인천광역시 옹진군, 서울동부지방법원, 그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