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옆에 동그라미옆에 동그라미내부의 원 - 글쓴이 : 오수정
1998년부터 시작된 ‘동그라미’ 기록들은 2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작가에 의해 기록되고 있다. 연속된 드로잉 속에 우연히 발견된 동그라미의 미세한 형태적 다름은 작가의 충분한 호기심을 유발했고 개별 존재를 확고히 하듯 ‘동그라미 하나에 핵심 하나’로 그 성질을 정의한다. 이는 곧동그라미의 정체성이 된다. 정체성을 부여받은 개별적 존재들이 유사 집단을 만들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친한 동그라미들이 짝꿍이되었어요.’ 호의적인 객체들끼리 자의적으로 해체, 분해, 결합, 선택, 응용, 연결을 통해 창조된다. 여전히 ‘존재 하나에 핵심 하나’라는 본질적 성질은 유지되고 있으나 이제는 서로 얽혀 있다. 왕래 속에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듯 이들은 모양을 주고받으며 소통을 시작한다. 소통 속에 생명이 깃들어지고 이제 이들에게 이름이 필요해졌다. 작가는 동그라미에서 처음 나타난 것을 ‘토끼’라 칭한다. 단순히 이름이 필요해 잠시 활자를 빌려온것일 뿐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토끼 성질과 아무런 연결점은 없다. 이름을 부여받은 살아 있는 존재들은 이제 작가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각자의 움직임대로 주체적 방향성을 가진다. 작가는 그저 관조적 태도로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할 뿐이다. 그렇게 기록된 기록지는 현재 2만페이지 분량의 책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기록되는 중이다. 이것이 윙크토끼의 시발점이며 〈윙크토끼 설계도〉의 청사진 ‘토끼 언어’이다.
〈윙크토끼 설계도〉에는 〈사슴 숲〉, 〈알파카 월드〉, 〈전 우주의 친구들〉, 〈다람쥐 주민센터〉 등 다양한 세계관이 존재한다. 단편 작품임에도 입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토끼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는 단독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작가의 도움을 받아 토끼 언어에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로 만화, 영상 애니메이션이 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겹겹이 쌓아간 계층들은 서사 구조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흐름이 읽힌다. 여기서 무자비로 한 레이어를 떼어 보면 그건 또 다른 세계관의 시작, 중간, 끝점이 되어 새로운 서사가 시작된다. 실제 작가의 2만 권 책 안에는 중첩된 레이어들이 기록되어 연결을 이룬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단순히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 즉개연성 또는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는 것’1)이다.
‘말로 표현될 거 같으면 말로 하지 왜 그림을 그리겠어요,’ 인터뷰 중 작가가 건넨 문장이다. 우리는 종종 대상의 존재 인식은 있으나 대체될 활자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주먹구구식 알고 있는 단어를 나열하다 보면 본질은 사라지고 그저 보편성만 남는다. 때로는 지적 전통에 얽매여 해석하려는 마음만 가득해 쓸쓸히 변질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바라보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필자의 대답은, 적어도 홍학순 작가 작품에 있어서는, 그저 ‘체험’을 통하는 것이다. 체험 속에 직관적 수용이 될 수도 또는 세잔의 사과처 다양한 시점 변화와 오랜 시간성이 요구될지도모르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은 작품을 분석 대상으로 간주하여 형식 차원으로 읽히는 것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에로스 손길이 닿으면 누구든 시인의 자질을 갖추게 된다. 정신적 충만에 이르게 되면 자연스ഀ게 아름다움은 출산이 된다. 작가 세계를 해석의 대상이 아닌 에로스적 체험으로 나아간다면 작품들이 관람자에게 좋은 산파 역할이 되리라는 것을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1) 논문, 《무엇하는 시인인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9장의 개연성, 필연성, 가능성》, (범한철학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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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총9회
2023 윙크토끼 / 엔팩토리 갤러리 / 서울
2019 생명의 숲 / 균하 스페이스 / 속초
2018 윙크토끼 원 / 스페이스 55 / 서울
그 외
주요 그룹전
2023 토끼와 숲속의 친구들 / Spiral Rise Gallery / Shanghai, China
2021 오프 사이트 / 난지 미술 창작 레지던시 오픈 웹 스튜디오 / 서울
2021 포츈 텔링 / 일민 미술관 / 서울
그외 다수
레지던스
2021 난지미술창작 스튜디어 입주작가 /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