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의 파수꾼>전시서문 _ 엄윤선 스페이스 엄 대표
명조-종호 두 작가는 신화와 전설, 동화를 연상시키는 테마로 서로를 연결합니다. 레고 블록 같은 둥글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창과 폭탄으로 무장한 기사와 무시무시한 용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종호의 작품과, 음악의 선율이 나비와 고라니, 혹은 아예 악보의 형태로 가시화되어 우거진 숲속 나무사이를 유영하는 명조의 작품은 서로 다른 스타일로 유럽의 분위기를 드러냅니다.
물론 이 유럽의 맛을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닙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두 사람이 신혼여행으로 이태리와 바티칸(로마 시내에 있으나 바티칸은 엄연한 ‘독립국가’입니다!)을 다녀왔으니 그 지역의 풍성하고 충만한 르네상스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았겠지요.
종호작가의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동심童心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전투”입니다.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는 마음 – 순진무구하고 투명해서 말랑말랑했던 본질을 삐에로와 귀여운 동물친구들로 묘사해, 악마와 용으로 대변한 ‘동심을 퇴색시키는 것’과의 전쟁을 펼치며 동심을 수호합니다. 인간의 타고난 성품은 선하나 살아가면서 환경에 의해 악해진다는 성선설의 관점에 빗대본다면 동심은 선한 인간의 본성이고 그것의 변질은 악으로 인함이란 의미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결국 종호의 작품은 악으로부터 선을 지키기 위한 웅장한 대서사입니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선악간의 싸움의 장엄함과 잔혹성을 순화시키고 있으나 그 본질의 숭고함을 암시하는 트릭으로 작가는 중세 종교화의 테페라의 장식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명조작가의 작품은 그야말로 “음악의 시각화”입니다. 작품들에 영감을 준 음악의 악보가 화면에 흘러갑니다. 더러 나비와 고라니가 선율이 흐르듯 숲 속을 움직입니다. 이 고라니는 작가가 제주도 산행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잠자는 고라니에서 비롯합니다. 평화롭게 곤히 잠든 모습이 마치 산의 주인처럼 편안해 보였고 산행인들이 되려 그의 영역을 침범한 이방인처럼 느껴졌습니다. 대자연이 품은 고라니는 힘있고 우아했지요. 그때부터 고라니는 명조의 세계에서 음악의 리듬과 멜로디를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프랑스의 철학가 시몬느 베이유는 자신의 저서 “중력과 은총”에서 정신적 상승과 퇴학의 산물인 고상함과 저급함을 에너지 개념으로 바꿔 정의했는데 신의 은혜로 영감을 받은 예술은 땅으로 끌어내리는 중력, 그 저급한 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천상으로 향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예술은 밝고 행복하며 분명합니다. 불길하거나 난해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불쾌감을 유발하는 게 아닌 가공되지 않은 자유와 사랑에서 오는 힘이 분명합니다. (* 시몬느 베이유의 중력과 은총_심상용 서울대학교 미술관 관장) 명조가 보여주는 음악은 환하게 빛을 발하며 중력을 거슬러 어둠 속을 유유히 흐릅니다. 이 우아한 빛의 흐름으로 인해 숲의 어둠은 물러나고 평안한 에너지가 관객에게까지 전달됩니다.
<깊은 밤의 파수꾼>은 ‘밤’과 ‘어둠’으로 대변하는 악함과 두려움의 대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빛의 선한 존재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이르니 이 젊은 부부의 작업이 모두 그들의 신앙을 기초로 세워졌음이 명확해지네요. 선과 악, 예술의 도덕성, 표현의 자유의 범위, 그 모든 경계가 모호해진 현대 사회에서 이들이 규정과 정의(定義)가 엄격한 중세의 고전성을 따라가는 건 시대의 역행이 아닌, 오히려 말하고자 하는 바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인간은 동심, 선한 성품을 지키기 위해 끈임없이 악과 대항한다, 그리고 은총에서 비롯한 영감을 받은 예술은 우리에게 치유와 회복을 선사한다고 말입니다.
작가노트_명조
“하늘과 땅에 가득찬 그 영광”
캔버스에 가득찬 님프들은 찬란한 자연 안에서 그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본인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공존하는 숲 속의 은밀한 세계를 담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 연기처럼 흩어지는 음악의 선율,
곳곳에 떠다니는 푸른 나비들이 마치 자연이 숨겨둔 비밀을 속삭이는 듯하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존재들,
인간의 시야를 벗어나 고요히 살아가는 님프들이 이곳에 있다.
이 숲은 단순한 자연이 아닌 머물고 싶은 안식처이자 은신처와 같은 공간이다.
세상의 소음과 군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우리를 보듬어주고 살펴줄 수있는 엄마의 품과 같은 곳이다.
본인은 그러한 따듯한 어둠을 그리고자 하였고 그 안에서 찬란한 신비로움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하늘과 땅은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연결된다.
하늘을 유영하는 빛의 파도와 숲속에 흩어져있는 님프들은
세상 곳곳에 깃들어 살아가는 영혼들을 상징하며,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경계 없는 공간을 나타낸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생명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지,
그 관계가 얼마나 신성한지 느끼게 하고자 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수많은 생명체들이
조용히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각자의 방식으로 고유한 빛을 발하는 우리를 향한 찬미이자,
모든 존재들이 함께 그리는 하늘과 땅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다.
작가노트_종호
동심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감정이나 경험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 의해 점차 왜곡되고 위협받는 순수한 본질이다. 동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본질이 점차 흐려지고 흔들리며, 때로는 무력하게 사라질 것처럼 보일 뿐이다. 나는 이 점을 작품의 중심에 두고, 동심을 지키려는 의지와 그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동심은 결코 순수함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갈등과 충돌, 그리고 외부의 위협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동심의 복잡한 본질을 탐구하는 한편, 중세 고전 회화에서 차용한 미학적 언어를 통해 그 의미를 확장하고자 한다. 중세 회화에서 화려하고 장식적인 외면 뒤에 숨겨진 잔인하고 충격적인 순간들은, 동심이 단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며, 그 이면에 어두운 갈등이 있다는 본인의 작품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차용한 이 ‘화려함과 잔혹함의 이중성’은 동심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까이서 보면 긴장감과 충돌이 가득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면 그 장면은 다시 동심을 수호하는 아름다움으로 변형된다.
이 ‘이중성’을 중세의 기법으로 화면에 담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중의적 암시를 통해 동심이 외부의 위협 속에서도 굳건히 지켜지는 희망을 담고자 한다. 본인의 작품은 동심을 지키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형상화하며, 그것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삶의 복잡한 현실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가치임을 보여준다.
꿈속의 알레고리 - 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