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현숙 작가론 _개인의 기억, 우리 시대의 시선이 되다 - 배민영(예술평론가)

허현숙 작가론 개인의 기억, 우리 시대의 시선이 되다 글/ 배민영(예술평론가) 1. 서사적 자아 “나는 오늘도 기록해본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느 집의 딸로서, 어떤 가족의 아내로서, 새로운 생명의 보호자로서, 오늘도 치열하다. 30대 중반으로 들어선 한 사람으로서 ‘집’은 매우 특별했다. 이젠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 필요했고, 한 아이의 삶이 시작되는 공간으로써 단아하고 아기자기하며 안정적인 공간이길 바랐으며, 중산층으로서 상승하는 경제관념의 수단의 공간이길 기대했고, 그 누구보다 뒤쳐지지 않는 안정적 가정이 ‘집’으로 완성되길 바랐다. 그래서일까. 애증과 애착이 만들어낸 집에 대한 집착은 내 경험만이 아닌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든 바램이기도 했다. 그렇게 ‘집’은,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에서 현재를 사는 ‘경험’으로, 미래를 꿈꾸는 삶으로서의 ‘집’으로 구축된다.” 이 글의 중간 혹은 맨 끝 어디에 놓아도 상관없었을 「작가 노트」 일부인데, 탈고 과정에서 문두로 옮겨온 까닭이 있다. 이 글은 허현숙에 대한 분석 글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예술을 논할 때 쓰는 그 흔한 말인 ‘공감’에 대해 새삼 정의하고 들어가기에 이 노트만큼 간단명료한 텍스트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공감’은 본래 그리스어로 ‘sym pathos’로 함께 고통을 느낀다는 뜻이었고, 이는 ‘타자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임’이라는 맥락에서는 억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지녔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전쟁에서 복수의 칼날을 받을 때, 무릎이 꿇린 채로 적장에게 이 상황을 수용한다고 고백해야 했던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은 sympathy가 동정이나 연민 정도로 많이 쓰이고, 심지어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타인의 고통Regarding the Pain of Others』등을 통해 타자화된 고통과 자신의 안전함에 대한 안도감을 넘어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호의를 뜻하는 ‘empatheia’에서 유래한 empathy가 더 모범적인 ‘공감’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실 sympathy의 본래 의미를 섞지 않고는 오히려 empathy에도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30대 이상이라면 대개 시간과 경험의 누적 효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위의 노트는 현대 공동체주의 및 덕 윤리의 대표 주자인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의 유명한 아래 논고도 떠올리게 된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이고, 누군가의 사촌 또는 삼촌이다. 나는 이 도시 또는 저 도시의 시민이며, 이 동업조합 또는 저 직업집단의 구성원이다. 나는 이 씨족에 속하고, 저 부족에 속하며, 이 민족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좋은 것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누구에게나 좋아야 한다. 이러한 역할의 담지자로서, 나는 나의 가족, 나의 도시, 나의 부족, 나의 민족으로부터 다양한 부채와 유산, 정당한 기대와 책무들을 물려받는다. 그것들은 나의 삶에 주어진 사실과 나의 도덕적 출발점을 구성한다. 이것은 나의 삶에 그 나름의 도덕적 특수성을 부분적으로 제공한다.” 혹자는 이러한 노트에 대해 작가가 기성 세대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매킨타이어의 공동체주의에서 쉽게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도출해내려고 하는 일부 학자들의 침소봉대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허현숙의 삶을 그림과 함께 듣다 보면, 오히려 작가론적 논평은 “과정은 치열했고, 결과는 차분하다. 그러면서도 형태는 역동적이며, 감상자는 흥미롭다.”는 결론으로 치닫게 된다. 또한 2018년 작업노트 ‘어디서든 행복하길 바랄게요’ 이후 공백기에 가까웠던 2019년을 회상하며 “그때는 무엇을 했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렵지만, 그 전후로 나는 비로소 ‘사회인’이 된 것 같다. 부모가 마련해 준 보호의 틀에서 벗어나며 아버지를 간병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전시를 이어 나가기 위해 새로운 노력들을 해야 했다.”고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매킨타이어의 ‘서사적 자아’ 개념은 더욱 명징하고 단단하게 이해가 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도덕적 물음에 답하려면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로 존재하는가?”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허현숙의 삶은 이미 2009년에 대학 졸업 전시 준비 시즌 6개월간 연상連喪을 겪는 데에서 변곡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보통 20대 중반에는 자타가 “사회인”이라고 명명하는 관례를 따르지 않고 30대 중반에서야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황은 매우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경제인’이라는 대안적 명명도 있지만, 사실 이는 경제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나 지나치게 호모 에코노미쿠스적인 인간상을 의미하기에 ‘생활인’ 정도에서 합의를 보게 된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사회생활을 망치는 가장 커다란 요인은 사회생활이 쉬울 거라는 착각이다.”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허현숙은 환경의 압도적인 변화를 통해 오히려 그러한 착각조차 사치였던 십 수년간을 자신만의 서사로 이끌어온 것 같다. 중심 소재로 알려져 있는 ‘집’은 그 시작이었을 뿐, 때로는 과자로, 때로는 현수막으로 계속해서 추출과 해체, 변형과 암시되며 자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도, 뒤에 잠시 숨어 있기도 하는 대상이다. 오히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허현숙의 전업 작가로서의 데뷔와 작업 활동은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의 “나쁘지 않았다”는 말은, 아무리 노력해도 무명의 10여 년을 이겨내야 하는 90퍼센트 이상의 작가들에 비해 아이코닉한 정체성을 부여받으며 미술관들의 러브 콜을 받기도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잠시 1980년대생인 허현숙의 세대가 관통해온 시간 속에서 그의 그림에 왜 미술관들이 주목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는 신자유주의가 대세로 부상했고, 한국은 ‘88 서울올림픽 전후로 냉전 종식의 기대 속에 독일 통일을 부러운 시선으로 목도하는 한편 소련 해체를 보며 불안해해야만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올림픽 주경기장이 잠실에 지어진 것을 상징적으로, 부동산적 전환이 일어나는 대변혁이 일어났다. 이는 기존의 문화주택文化住宅 시대를 끝내고 이른바 ‘아파트 공화국Apartment Republic’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노원구의 경우 아파트가 전체 가구의 80%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틈바구니 1986년 상계동 구시가지의 다가구주택 양옥집에서 나고 자라온 허현숙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사람은 그들이 지은 집과 길, 거리를 통해 그들의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 본인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된 도시작업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사이자,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라고 한 서사적 자아로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숭례문과 같은 기념비적인 건물을 그리지 않고 지금 살아가는 집과 마을의 풍경과 관계들을 그리는 것에 대한 고집이 있는 허현숙은 “과거의 풍속화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적인 해학을 더 담을 수 있는 우리 시대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혀 왔다. 허현숙의 그림을 일각에서 한국화, 흑연화, 도시개발사 등으로 단정 지어 분류하는 표층적 규정보다는 삶, 집이란 무엇이고,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간으로 규정하는 심층적 분석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이중적 구조 성북구 정릉동의 산동네 출신 건축학도 승민이 제주도에서 온 이방인 피아노과 서연과 같은 대학에 다니며 친구가 되었으나 결국 연인으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건축학개론>(2012)에서는 의외로 건축 양식 자체보다 지역 환경이 압도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부각하며, 우리에게 ‘집’은 어떤 개념인가를 역설한다. 특히 서연에게 무작정 “같이 살자.”고 고백하라 하는 친구 납뜩이에게 “지금 당장 어떻게 같이 살아. 집도 없는데.”라고 말하는 승민에 대해 단순히 연애 서사로 보는 관객들은 답답한 소통 능력의 소유자 정도로 소비했지만, 이 역시 집은 house이면서 동시에 home이라는 이중적 구조dual structure 안에 있는 개념임을 활용한 것이다. 허현숙은 2009년 돌아가신 네 명을 소환하고 싶었으나 사진이 없었기에 이들을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때의 집’ 다시 그리는 것이라 생각, 그렇게 하면 살아 돌아오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집을 대신 초상화라 생각했다고도 했다. 그렇게 박물관도 돌아다니고 ‘구글 어스’도 보면서 돌아다니면서 취재를 하고, 그 동네에 남아 있는 분들을 인터뷰도 한 것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간절함’이라는 단어 안에 다 담기도 벅차다. 집이면서 사람이고,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기억이면서 망각이고, 획득이면서 상실인 그 상태에 대해 허현숙은 가족의 부재를 회귀하는 방법으로써 ‘함께 살았던 집’을 그린 것인데, 그러한 기록적 재구성이 자신의 그림이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서울시립미술관에 동시 소장되었고, 자연스럽게 미술관들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후 소장품 기획전 등을 통해 다른 미술관들로부터도 전시 섭외 의뢰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허현숙의 그림이 기록을 통한 기억과 의식이라는 이중 구조적 주제에서 사진과 본질적으로 어떤 공유점과 차이점을 갖는지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On Photography: Walter Benjamin』를 엮은 에스터 레슬리Esther Leslie는 「발터 벤야민과 사진의 탄생」이라는 글에서 벤야민이 “한 사람이 죽는 순간에 비로소 그 사람의 일생이 후대로 전승될 수 있는 형태를 띤다.”는 말과 함께 자아와 기억의 작용은 사진의 메커니즘과 유사하며, “기억이란 위기의 순간에 한 장의 사진처럼 떠오르는 무엇”이라고 했다고도 밝혀두고 있다. 그러면서 “벤야민은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고하는 글에서, 마치 시간이 멎은 사진에서처럼 시간적 거리가 사라지는, 운하임리히unheimlich라고 표현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고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의 소거는 기시감(旣視感) 또는 기청감(旣聽感)에 따라 특정한 기억이 의식의 시야로 떠오르는 것은 나중의 일이며, 그야말로 과거가 현재로 뚫고 나온다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또한 벤야민의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 독일어 초판(1950)에 붙인 테어도어 아도르노Theodor W.Adorno의 「후기」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일부를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이 동화 사진들은 예전에 사라진 삶이 남긴 폐허를 조감하는 항공 사진이기도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모델을 찍은 스냅 사진이기도 하다.” 레슬리에 따르면, 벤야민은 해당 책을 쓸 때 숨은그림찾기의 언어 버전에 해당하는 글, 곧 현실을 그린 그림 그 자체를 숨은그림찾기로 만드는 농도 짙은 단상적인 글이 되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결국 묘사는 어떤 기대와 의도가 표출되는 적극적인 창구인데, 사진 그 자체나, 그 내용에 대한 설명이 글을 통해 기록과 기억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실제로 있는 길 위에 새로 있는 건물들을 지우고 예전에 있었던 건물들을 재구성하면서 유년기화 시킨 ‘도시계획都市計劃’ 시리즈(2011-)는 허현숙은 작가노트에서도 밝히고 있듯 “새로운 것을 만들기 전, 기존의 레퍼런스를 모은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활용적이든, 비활용적이든 ‘기존’이라고 하는 레퍼런스가 필요하다.”는 의지에 따라 단순히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처럼 발품을 판다. 자신은 아직 온실 속의 화초라며 미숙했다고 말하는 시기에도 사실은 위기의 순간을 겪는 중에 조숙하게 묵묵히 해온 작업의 면모가 보인다. 또한 그렇게 연구가처럼 축적한 사실적 자료들, 그리고 가운데 초점을 맞춰 자를 대고 그리드와 개요를 짜놓기는 하지만 위에 올리는 본격 작업은 자를 대지 않고 그림으로써 손맛과 뒤틀리고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50년 이상 된 집들에서는 거의 무너져내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 구옥에 각을 잡고 터치가 들어가는 것과 손맛이 들어가 각자의 삶이 다른 내용으로 채워져 왔음을 상기하게 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허현숙은 고등학교 때 건축 혹은 토목 분야로의 진출을 꿈꾸다가 진학 지도를 미대 쪽으로 받아 그렇게 대학교를 갔고, 입학 후에는 미술대학의 커리큘럼이 자신과 맞을까 하는 의문으로 회화뿐만 아니라 디자인, 공예, 고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공 탐색을 하던 중에 환경디자인 교양 수업에서 제도를 통해 설계도면을 그리는 게 매우 흥미롭고 잘 맞았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전체 구도는 큐브릭하게 그리지만, 마치 시간의 흐름처럼 물렁물렁해진 집을 그리며 최근에는 예전부터 해온, 주공아파트를 그리려는 고민이 본격화하면서 새로운 실험 단계로 진입했다고 한다. “다세대 주택만을 그리려던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그 아파트들이 없어질 것이며 그것을 그리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특히 2025년 9월 스페이스 엄에서의 네 번째 개인전인 <도시, 그 알록달록한 공감의 시대>는 전시이면서도 릴레이 보고전처럼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실험성과 에스키스와 같은 생각들을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다.”고 밝혀둔 바 있다. 그러나 ‘미래적 건물’이나 ‘미래지향적’처럼 다소 딱딱하게 묘사된 작업은 다소 생경하지만 다른 사람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없어진 동네로 회귀하는 것보다는 지금 있는 동네가 없어지기 전에 그리는 것을 시작했고, 2020년 <뉴 타운> 시리즈는 현재를 말해야 이게 나중에 온전한 과거가 될 것”이라는 증언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단계는 그 자체로 이중적 구조를 증명하고 있다. 3. 시대적 매체 허현숙의 작업들이 미술관과 여러 도시 기록 매체들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획 의도들 안에서 단순화되거나 함몰되지 않아야 하는 한 가지는, 시대와 전시 기획이 있고 작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작가가 있고 전시 기획이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1980년대는 이전의 30여 년간 사회학, 언어학, 미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구조주의 시대에서 개별성이 부각된 ‘개인 행위자의 회귀’ 시대이다. 레이몽 부동Raymond Boudon 과 프랑수와 부리코Francois Bourricaud는『사회학의 비판적 사전A Critical Dictionary of Sociology』을 통해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려면, 관련된 개인의 동기를 재구성하고 이 현상을 그 동기가 규정하는 개인적 행동들이 집결된 결과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렇기에 어떤 작가에 대해 논하고자 할 때 사회학적 동기와 상관없이 이 ‘개인적 행동들의 집결’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가 천착한 시간과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김성홍은『길모퉁이 건축』에서 “한 개인이 일생 동안 오래 머무르는 곳의 순위를 매긴다면 첫째는 일터, 둘째는 집, 셋째는 길”이라며 “무엇보다 길은 나와 세계가 만나는 통로다. 집이 도시를 향해 드러나는 곳, 도시와 집이 맞닿는 곳, 무목적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 길이다. 비록 말을 건네지는 않더라도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가며 서로의 모습, 사고방식, 문화적 암호를 공유한다.”고 설명했는데, 개인의 관점에서 집과 길을 그려온 작가는 점차 그 공간이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코드 또는 현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성실함과 축적의 결과다. 피터 버크Peter Burke은 역사 연구에 수반되는 미학적 요소에 대한 이해를 ‘상상’이나 과거와 직접 접촉하는 것 같은 감각을 포함하는 ‘감각화感覺化’에 비유한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의 말을 빌려 “역사 연구와 예술적 창작의 공통점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방식”이며,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의 “흑백 이미지는 겉으로는 좀 더 사실적으로 보이던 채색 이미지보다 ‘더 냉정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은 이 때문에 이미지를 보는 사람들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허현숙의 작업이 이 말들의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작가의 의도가 그래서가 아니라, 그 성실한 축적 속에서 “개인의 동기가 재구성” 되면서 “사회적 현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허현숙이 처음 시도한 ‘과거의 소환’은 그것이 재현하려는 사실성의 완벽함이나 과거 지향성에 있지 않고 이후의 작업들과 계속 소통하면서 현재성과 미래성을 갖는다. 따라서 전시 혹은 열람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주관의 객관화, 객관의 주관화가 치열하게 무게 중심을 달리하며 교차하게 되는 이미지로서 ‘시대적 매체’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렇게 볼 때 주로 흑백을 그리지만 이따금씩 채색을 섞기도 해온 점은 그러한 교차성을 더욱 증폭시켰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신호탄은 흑백의 집 그림 위에 노란 원안 빨간 글씨가 써 있던 ‘慶祝(경축)’(2018)이었으며, 이는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오픈스튜디오를 통해 잠시 공개되었다가 2024년 레이블 갤러리에서의 전시 <Once upon a town_나의 옛날옛적에게>에서 공개된 ‘인생한방’ 시리즈, 그리고 해당 전시가 있던 해의 작업 ‘꼬깔콘하우스’, ‘꾀돌이집’, ‘동물원’ 등의 과자 봉지 시리즈로 이어졌다. 기존의 작업들에 비해 키치해 보이기도 하는 과자 봉지 작업들에 대해 허현숙은 “사실 시리즈로 그렸다기보다는 내킬 때, 더 정확히는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그려봤다.”고 고백한다. 작업실 앞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갑자기 과자를 이것저것 사 와서 먹게 되었는데, 집 하나 갖는 게 소원인 것처럼 어렸을 때 과자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리서치도 열심히 해서 나름대로 고증에 힘쓰고, 먹어본 과자만 그리자는 각오로 먹어보지 않은 과자는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업 자체를 컬러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아이와 함께 색칠 공부를 할 때 좋아지는 기분을 살려 반어적으로 컬러풀하게 그려서 오히려 더 명확하게 그 시절의 느낌으로 가게 하는 일종의 타임머신과 같은 기능을 하는데, 이 역시 주관과 객관의 절묘한 교차점이다. 작가의 형태와 색에 대한 감각을 보여주기도 할 뿐만 아니라 기분이 안 좋을 때 “당이 당긴다.”고 말하는 우울감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그것은 자신을 착취하는 후기근대적 우울증이라기보다는 부재하는 대상과의 부정적 관계 속에라도 놓여 있는 근대적 멜랑콜리로서, 강렬한 리비도가 투여된 대상의 상실을 체험 후 맞이하는 슬픔과도 유사하다. 그것은 또 다른 창작의 근원이 된다. 게다가 과자 봉지는 사실 광고판이다. 현수막과도 비슷하다. ‘치토스’나 ‘자갈치’ 등은 더욱 극적으로 도안조차 깃발이 펄럭이는 형상이다. 봉지는 납작한 것이지만 내용물이 들어가면서 불룩하게 입체화되고 다소 움직이기도 하기 때문에 객체화된 사물인 동시에 생동감을 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열어서 먹으면 없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부피에 비해 가벼운 것이라는 속성을 모르는 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소비적 상업성과 실존적 정주성 사이를 이어주는 매체 혹은 매개체이다. 자주 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레이블 갤러리와 궁합이 잘 맞았다. 4. 전환적 시선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을 디자인한 바 있는 구마 겐고Kengo Kuma는 『약한 건축Makeru Kenchiku』를 통해 보편과 특수, 근대와 비근대의 ‘더 이상 유효하지도 않은’ 당시 논쟁 속에서 유일하게 눈길을 끈 작품은 게리 힐Gary Hill의 <집을 달라, 텔레비전을 보여 달라.>였다고 기술한 바 있다. 그는 건축가로서, 조각 부문 대상이 처음으로 비디오 아트 작품에 돌아가며 건축과 영상이라는 예술의 외부에 있던 장르에도 전환적인 시선을 보여주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여전히 공간은 얼마나 대상화되고Objectified 있느냐 하는 역설인지도 모른다. 한신 아와지 대지진 피해자들의 절규를 모티브로 한 해당 작품에서 공간과 영상이 통합된 해당 작품은 ‘명백한 비참함’ 앞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따위는 관심 밖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작업들이 ‘공간’이라는 속성의 안과 밖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응시하고 표현했다. 그것은 단순한 다양성이 아닌 전환적 사고들의 변증법적 대화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공모사업인 <프로젝트 해시태그>는 2021년 팀 새로운 질서 그후...를 선정하며 ‘개방, 공유, 참여’를 기본 정신으로 삼았던 웹World Wide Web이 오히려 사회의 차별적 양상을 심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의 부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특히 전시와 출판 등의 내용으로서는 그조차 객체화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제 제기라기보다는 위키노믹스Wikinomics 시대가 부상하며 이미 꾸준히 제기되어 온 텍스트들의 응용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여 작가들의 무지나 게으름 때문이라고 할 수 없고, 단지 시대의 흐름이며 반영이다. 웹은 탈현대인들에게 있어 집이자 사회이다. 분명 실체가 있지만, 무형성과 가상성이 크고 부동산 아닌 동산이기에 그 영역을 처분하거나 탈주하는 것도 일반적으로는 용이하다. 웹은 그 안의 주체이자 객체인 인간을 대상화하기도 하지만 웹 자체가 대상화하기도 한다. 웹이 대상화될수록 기존에 대상화되었던 현실은 상대적으로 그 지위를 회복한다. 현실은 “진짜 공간을 달라, 우리의 시간을 보여 달라.”고 외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허현숙의 그림들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한국화인가 펜화인가. 기록화일까 풍자화일까. 강 건너 불구경일까, 불 건너 강구경일까. 작업은 운명의 주체인가, 객체인가. 이러한 경계에서 허현숙은 장르의 엄격한 구분, 재개발 이슈에 대한 정치적 견해들, 현재성과 재현의 관계, 보편과 특수, 개인과 사회, 자연과 인공 등을 넘나들고 있다. 최근에는 집이 없는 집, 길이 없는 길을 보게 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경축’을 비롯해 ‘우리동네에도 백화점이 있습니다’, ‘우리동네 마스코트’ 등은 사실과 공상, 자연과 인간, 정면에서 바라보기와 위에서 내려다 보기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꿈동산’ 시리즈는 좀 더 해학적으로 그 기운을 이어가고 있다. 이때의 작가 노트는 한 편의 시와도 같다. 김광섭의「성북동 비둘기」보다 경쾌하고 최정례의「빵집이 다섯 개 있는 동네」보다 무거운 호소는 담담한 리듬감을 입고 생각할 거리가 된다. “특별한 우리 아이들을 평범하게 만들기 위해 돈을 들이는 게 아닐까” 2013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하상욱의 「서울 시」의 한 대목처럼 대한민국의 사교육에 대한 촌평을 글로 풀어내진 않았지만, ‘배움’, ‘회복’ 등 포화 상태와도 같은 현실의 ‘공급’들은 어떤 수요와 기대에 부응 또는 견인 역할을 하는지를 말쑥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는 2008년 서울시가 도시경관 미화를 목적으로 추진한 간판 정비사업 이후 더는 같은 형태로 달 수 없게 된 구식 간판들을 통해 ‘집’이나 ‘길’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아도 우리에게 그 당시의 집과 길은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사회·문화적 초상이다. 거기에는 꿈과 희망의 가시성과 비가시성이 동시에 녹아 있으며, 개개인의 욕망과 경쟁, 협동과 성취, 아픔과 회복이 어우러져 있다. ‘경축, 기회와 공감의 시대’는 현수막들이 집과 자연을 감싸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하나의 사물과 같은 덩어리로 대상화되기도 한다. 여기에 어긋난 세 개의 캔버스를 통해 메시지의 허와 실을 말하려는 듯한 ‘희망찬_살기좋은’이나 네 컷 만화의 모티브가 감지되는 ‘에헤라디야’까지, 최근작들은 숨은그림찾기 혹은 로컬리티나 메시지 맞추기의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허현숙에게 있어 삶의 공간들을 보는 시선이 계속해서 전환되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먼저, 압도적인 환경의 변화에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과 의지를 천명하고 실천해옴으로써 작가로서의 행보에서 크고 작은 전환들을 주도해 온 것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가령 2017년 부산문화재단에서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부산의 오래된 건물들을 그리게 된 개인전 <기억도시, 부산> 당시에 부산의 동네들을 계속 돌아다니며 역사박물관 등을 통해 부산의 첫 아파트나 그 지역 특유의 건축 양식 등을 보게 된 것은 로컬리티에 대한 학습과 수용뿐만 아니라 타지역에서 온 시선에서 그 지역의 문화 재현과 재구성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주체적으로 고민한 흔적들이다. 허현숙은 “부산의 지역적 특성을 많이 보여주려고 했던 기획의 지속성과 일관성, 해운대 달맞이길보다는 광안리 근처 구도심 쪽에 있다는 위치의 장점도 있어서 춘자아트갤러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또한 2018년 도봉문화재단 평화문화진지 기획 <코리안 메모리얼> 참여 경험에 대해선 “해당 장소가 문화재여서 못을 새로 박을 수 없고 기존에 있는 못과 레일을 활용해 걸었어야 했으며 전시 중 빗물이 새서 작품이 손상될 뻔하기도 했지만, 노원구와 도봉구의 인접성으로 인해 가옥과 동네의 형태가 비슷하기도 해서 지원한 것이고 대체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고 회고했다. 또한 2019년 12월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의 단체전 <Recollection: Reinterpreting Tradition and Heritage>는 당시 임신을 한 상태에서 경력 단절에 대한 저항을 위해 공모전 지원에 좀 더 박차를 가해 참가하게 된 전시라고 한다. 그리고 다녀오자마자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하에서는 작가들 간 만남도 힘든 상황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시리즈를 작업해 2023년 소노아트에서 동명의 타이틀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허현숙은 유년기로의 회귀에 대한 주제의식으로부터 시작해 늘 집과 사회와의 관계를 그려왔지만, 과거로의 회귀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작업한 ‘어디서든 행복하길 바랄게요’ 이후 형태적으로는 과자 봉지, 현수막, 간판 등 집이 아닌 것을 그리면서도 언제나 ‘장소감sense of place’을 잃지 않았다. 어쩌면 카메라와 노트가 담긴 백팩을 매고 코레일 ‘내일로’ 상품의 열차를 타고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던 기억들 속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함께 나온 친구들의, 작가가 회상하기로는 “예술계 친구들보다도 더 신기하고 다양했다.”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던 상황들도 허현숙에게는 일종의 장소감을 제공하고 있었을 것이다. 존 에그뉴John Agnew가 “사람들이 장소에 대해 가지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애착”이라고 정의한 이 개념을 자신의 전환적 시선 안에서 유지하기 위해 석사 논문을 작성하며 원서까지 확인하는 등 연구자로서도 정도를 걷고 있는 허현숙의 박사 과정도 단단하고 유의미할 것이리라 기대한다. 어떤 주제를 계획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왠지 ‘장소’에 대한 소속감이나 ‘자리’와의 이질적인 관계를 넘어 우리 시대의 사회인문학적 태도는 어떻게 전환되고 공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담아낼 것 같다. “앞으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다짐과 바람을 그렸다.”고 설명한 2020년 이후의 작업들 역시 언젠가는 과거가 될 수밖에 없겠지만, 그 ‘개인사’는 또다시 우리의 ‘문화사’에 기여할 것이며, 그의 작업 중 한 제목처럼 ‘미래지향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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