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k a Way> 전시서문 | 엄윤선 (스페이스 엄 대표)대학원에서 예술사를 전공한 필자가 가장 처참한 점수를 받은 과목은 '사진학'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느라 가뜩이나 영어가 벅찬데 교수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강의가 아닌, 어떡하든 자신을 우아하고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는 듯 이상한 형용사와 관계대명사를 나열한 연극무대같은 강의로 사람을 힘들게 했다. 일례로 "기록의 잠재적으로 변혁적인 정서적 차원을 고려해 아카이빙 기법을 창의적으로 활용하거나 대안적인 기록을 생성하는 사진 기반 예술 작품의 특정 예를 분석해보자"라는 표현. 나는 한참의 고민 끝에 이 질문을 "개인의 정서가 표현된 예술 사진 작품에서 창의적으로 아카이빙 기법을 사용하거나 새로운 기록을 만드는 예가 있는지 알아보자" 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 수업으로 사진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하고 난해한 분야라는 편견을 갖게되면서 10여년의 전시 이력에 사진전은 단 한번도 시도하질 못하게 됐다. 사진을 저 수준높은 언어로 설명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사진=기록" 이란 정의는 카메라가 렌즈를 통해 실존하는 피사체를 담는다는 메카니즘으로 인해 오랫동안 불변의 진리로 여겨진다. 초기 사진기술이 렌즈, 현상과 인화의 복잡한 화학적 절차에서 시작해 필름 사진을 지나 디지털 사진으로 발전하는 동안, 사진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매체로서 전쟁 환경 인권 젠더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사회적 역할과,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등 다양한 예술 운동과 소통하며 그 자체로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의 자리매김,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는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자신만의 시각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수단으로 그 의의를 확장했다.이번 전시는 현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 명의 사진 작가가 선보이는 풍경, 디지털 콜라주, 그리고 컨셉 사진의 독창적인 시각적 이야기들을 선보인다. 오래전 패기를 잃은 사진전시에 도전하는 건 '사진학'에 대한 학문적 소양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예술'로써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작가 개개인이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탐구하고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이번 전시가, 사진 고유의 '기록'이란 역할을 바탕으로 "개인의 정서를 표현한 예술사진으로써 창의적으로 아카이빙 기법을 사용한 좋은 예"가 될 것임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