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 | 엄윤선 스페이스 엄 대표스페이스 엄이 2020년부터 시작한 신앙전이 올해로 5회를 맞았습니다. 올해는 7인 작가들이 ‘나단프로젝트’라는 그룹명 하에 ‘예배’를 주제로 회화 도자 사진 작업을 선보입니다. 갤러리와 작가는 언제나 대중들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를 해왔습니다. 스스로의 명예와 명성을 높이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 전시의 가장 큰 목적이니까요. 나단프로젝트와 스페이스 엄의 협업은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기 위함입니다. 갤러리는 공간으로, 작가는 작품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자. 오롯이 하나님께 바치는 봉헌이 되는 전시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음악인들도 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각자의 신앙을 예술로 재현한 이 전시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전시를 관람하는 모두에게 은혜와 축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언젠가 이런 평가를 받게 되기를 기획자로서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 그 작가의 가장 깊은 내면을 알고 싶다면 나단프로젝트로 신앙전에 참여했던 작품들을 추천드립니다. 권마태 _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비밀은 예외 없이 십자가를 동반한다는 사실 때문에 삶의 매순간 마다 위태로운 마음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천국의 영광은 누리고 싶지만 십자가는 피하고 싶으니 믿음의 삶이란 어쩌면 역설의 바다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나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비밀을 실재하지만 굳이 보려고 하지 않는 그림자에 비유하였고 육신이 아니라 삶을 반영하는 그림자의 변형을 통해 '신앙인의 참모습이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몰리킴 _ “지금이 네 인생 가장 풍요로운 때란다. 네 잔이 복으로 넘치는구나. 긴 시간 동안 오르막을 오른 후에 너는 지금 따스한 햇살을 흠뻑 머금은 푸른 초원을 터벅터벅 걷고 있다. 네가 지금 이 순간의 편안함을 온전히 누리기 원한다. 네게 이 복을 주는 일이 내게 기쁨이란다.” 한 분의 시편말씀 해설은 이번 작품 ‘Blessing’의 영감이 되었다. 작업을 하며 언젠가 주님이 나에게도 인생의 어느 골짜기를 지난 후 이렇게 말씀해주시길, 그 전능자의 임재 안에서 기쁨으로 가득한 빛의 자녀로 잠잠히 감사하게 되길 기도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나에겐 쏟아져 내리는 따뜻한 빛과 같고 봄비 같았다. 잠잠히 온전히 맞으며 향유하며 감사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상태. 예배의 마지막은 그런 임재 안에서의 감사와 기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송진욱 _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흔히 ‘마네킹 같다.’고 비유하곤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마네킹을 보며 ‘아름다운 사람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마네킹은 옷이나 액세서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창조된 것이다. 물론 정교하게 만들어진 마네킹은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팔과 다리, 머리가 없는 토르소 마네킹을 보면 그 본래의 목적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것은 오로지 의상과 장신구를 빛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이번 전시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크리스찬의 기도를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있는 마네킹에 비유하여 작품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안나영 _ 나에게 묵상이란 셀라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내 시선, 내 입술, 내 발걸음, 내 손짓, 익숙한 이미지와 색들을 거두어내고 과거의 나를 덮고 긁고 긋고를 반복하다가 하나님 앞에 잠잠히 내 공간을 내어드리는 그분을 위한 여백을 만들어 드리는 시간. 그것이 작업의 시작이었다. 멈추어서 들어라. 너의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너의 작은 귀를 반짝여 나의 음성을 들으라. 너를 감싸는 나의 깊은 숨을, 호흡을 느끼어라. 내 안의 깊은 자리에 하나님의 음성이 머무는 공간을 기꺼이 내어드릴 때 하나님의 감동으로 살아나고 회복되는 셀라. 그 말씀이 내 삶에 임재하실 때 비로소 내 영혼의 감사와 찬양이 울림이 되는 셀라. 그것이 진정한 예배의 시작이 아닐까. 윤주원 _ 왜 무화과나무 이파리인가? 성경에 제일 자주 등장하는 나무는 무화과나무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부르고 들었던 ‘무화과나무’ 찬양을 자주 흥얼거리곤 한다.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어도,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나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 하박국 3장 17-18절 말씀을 찬양으로 옮긴 것이다. 유다민족의 죄악으로 인해 철저하게 부서지고 멸망하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박국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고 선포한다.산산이 부서지는 절망이 닥친다면 과연 나는 이렇게 고백을 할 수 있을까?최근 몇 년간 식물 이파리를 소재로 작업을 하고 있어 무화과나무 잎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화과나무 잎은 다섯 개로 갈라져 있어 사람의 손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흥미로운 모양에 매료되어 자세히 관찰하고자 작은 나무 한 그루를 들였다. 새순이 돋아나고 자라면서 잎의 크기가 커지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늘을 향해 뻗은 이파리들은 손을 들고 찬양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겠다고 다짐하는 이 찬양이 여호와 한 분이면 족하다는 나의 기도가 되길 소망한다. 이름 _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3]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주어진 빛‘을 이야기하는 나의 작업 중에 첫 시리즈인 ‘Wherever’를 통해 교제를 표현하였다.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중요하다. 하나님은 홀로 계시지 않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의 온전한 교제와 사귐으로 하나된 관계를 맺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도 죄로 인해 끊어진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시작을 빛의 이름으로 여셨다.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빛의 의미는, 너를 볼 수 있게 하는 관계의 시작으로서의 사랑이며 그 사랑의 완성은 예수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 다른 모습이 아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모습을 보며 수직으로는 하늘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를, 수평으로는 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하신 너와 나의 관계의 회복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빛은 비(非)물질적 물질로서 다른 모든 물질을 드러나게 한다”고 헤겔이 말한 것처럼 빛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드러나게 해준다.빛은 인간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근원적인 역할을 한다. ’Wherever‘는 빛이 존재하는 어디에나 사랑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그 사랑으로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최재희_한 줄 한 줄 쌓아 올린 화병에 마음을 품고 정성껏 향유를 붓습니다.은은한 빛의 결정은 충만한 기쁨과 감사를 담습니다.또다른 마음의 반짝이는 은은 점차 빛을 잃고 얼룩집니다. 유약하고 온전하지 못한 마음 같습니다.마음을 바라보고 마음을 빚는 시간은 삶을 드리는 봉헌의 시간입니다.내게 주신 선물로 올려드리는 사랑은 내 삶을 드리는 영적 예배이며 기쁨입니다.은은하지만 작은 반짝임을 품고 있는 화병처럼, 연마하면 다시 제 빛을 찾아 반짝이는 은처럼나의 잔잔한 빛을 안아주시는 사랑에 부족함 많은 마음을 내어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