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 초대전 : 시간의 틈

전시서문 : 시간의 틈 _ 선을 타고 가는 시간 | 엄윤선 스페이스 엄 대표 이지연 작가의 시그니쳐는 테이프를 이용한 설치미술. 파스텔톤의 마스킹테이프로 벽과 바닥에 선을 연결해 문과 계단, 벽과 같은 공간을 만듭니다. 그녀의 설치작품은 마치 어느 공간이 투영된 거울같습니다. 분명히 눈 앞에 존재하지만 손을 뻗치면 차가운 유리 표면만 만져지는 것처럼, 문을 열면 방이 나타나고 복도 끝의 코너를 돌면 다른 공간이 있을 것만 같은 그곳의 현실은 벽에 그려진 선 뿐입니다. 이지연 작가의 마스킹테이프는 무엇을 그리든 실제로 나타나는 앤서니 브라운의 <마술연필>처럼 초현실적이고 판타스틱합니다. 설치작품이 공간의 서사에 집중한다면 캔버스 위에서 직선을 연결하고 교차하여 만들어낸 평면작업은 조형성을 강조합니다. 설치작업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색채와 선, 면의 형태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지요. 이 평면회화는 나무 판넬에 양면으로 작업한 조각으로도 발전하는데 캔버스든 판넬이든 각각의 이미지가 수평으로 이어져 순서를 교차하며 여러 형태의 조형으로 확장, 변화할 수 있습니다. 베리에이션에 대한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합니다. ​​ 곡선은 전무하고 오로지 직선으로 이루어진 조형은 이성적이고 수학적입니다. 공간의 모서리를 이루는 선들을 조금의 오차도 없이 예리하게 작업한 것이 마치 컴퓨터의 CAD 도면 같기도 합니다. 보편적으로 예술성을 말할때 뒤따르는 ‘감성’과 ‘스토리’ 적 요소를 이지연의 작품에서 얼핏보고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이 미술관과 갤러리 기획자들에게 꾸준히 러브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치밀하고 계산적으로 보이는 모든 작업의 근간이 ‘개인의 감성에서 비롯한 상상력’이며 이 상상이 작가 개인에 그치지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동참하게 하는 설득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시간’을 언급하면서 상상력의 차원이 확장됩니다. 인간이 느끼는 공간은 길이 너비 높이의 3차원이며 여기에 시간이 더해지면 4차원이 되는데 안타깝게도 인간은 시공간이라는 4차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작가는 평면과 입체작품의 양끝 선과 면이 수평으로 연결될 수 있게 작업함으로써 시간이 더해진 공간을 제안합니다. 즉, 작업을 일렬로 나열했을때 공간이 무한으로 확장될 수 있는 반면, 이들을 접었을때 양끝의 거리가 가까워져 단번에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시공간이 어디이든 바로 건너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듣고보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와 우주여행이론인 웜홀Wormhole이 연상되네요.​실제로 작가가 이런 과학적 이론에서 영감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어디에든 문을 만들어 열고 들어가면 즐거운 추억이 남아있는 그때 그 장소가 나타날 거라는 낭만적인 상상력이, 선을 타고 시간을 넘나든다는 이번 전시의 주제로 발전됐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규칙적인 속도로 앞으로만 향한다는 일반적 정의에서 초월해, 선과 면의 연속성과 교차성을 통해 언제든 행복했던 시간으로 자유롭게 이동해본다는 상상을 재현한 작가적 시도가 물리천재 아인슈타인의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다니, 박사님이 살아계시다면 ‘상대성원리를 예술로 재해석한 작품’이라며 감탄하지 않으실까요. 마법연필같은 테이프로 연출한 벽 드로잉과 블럭처럼 이리저리 맞춰질 작품들 앞에서 나의 시공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펼쳐지는 선, 공간과 시간 |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공간은 시인에게 동사 ‘펼쳐지다’, 동사 ‘커지다’의 주어로서 나타난다. 공간이 하나의 가치가 되자마자―내밀성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가?―그것은 커진다. 가치화된 공간은 하나의 동사인 것이다. (중략) 하나의 대상에 그것의 시적 공간을 준다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공간을 그것에 준다는 것이며, 아니 더 잘 말해보자면, 그것의 내밀의 공간의 팽창을 따라간다는 것이다.1) 이번에도 어김없이 공간과 선(line)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지연의 선은 형식과 의미모두에서 변모와 확장을 거듭해 왔다. 작가의 경험이 축적될수록 선과 면, 색이 전하는 인상과 감각은 풍부해졌고, 그만큼 예민해졌다. 작가의 아득한 기억을 시각화하는 수단이었던직선들은 이제 조형 실험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화면을 구성하고 채우게 되었다. “공간을둘러보며 조각난 기억 속의 색과 잊고 있었던 기억의 모양을 열어”2)보던 작가는 지금, 현재의 시공간에서 자신이 지각하고 상상하는 공간을 누비며 창작한다. 그리고 스페이스 엄에서의 개인전 《시간의 틈_선을 타고 가는 시간》(2025)에는 그동안 작가가 지속해 온 실험의결과들이 종합되고, 극대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이지연의 선은 공간을 나누거나 구체화하는색색의 경계이자 공간을 선명하게 혹은 모호하게 하는 빗금이며, 이쪽과 저쪽을 붙잡아주는 끈과 같은 연결선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펼쳐내는 신비로운 선들이다.선과 면과 공간을 노니는-가로지르는 작가의 작업에 시간은 늘 함께한다. 공간을 체험한다는 것은 흐르는 시간을 전제한다. 지금의 시간만 있는 건 아니다. 과거-기억과 현재-행위,그리고 이 둘의 만남이 끌어낼 미래가 나란하게 이어진다. “선과 색들이 만드는 시간의틈”3)은 여러 겹이다. 작품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니 작가가 라인 테이프나 물감으로 그려낸, 층층이 이어지고 겹치길 반복하는 벽과 공간들이 눈에 들어온다. 출구인지 입구인지 알 수 없는 문이 끝없이반복되는 미지의 세계 같다. 흥미를 자극하지만 긴장감을 자아내는 분위기는 이지연의 작품대부분을 지배한다. 가장 큰 이유는 그려진 형상과 시점 사이의 불일치 때문이다. 위에서내려다본 시점은 대상-공간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아랫부분이 감춰져 있어 벽의 높이도, 공간의 크기도 가늠할 수 없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장소는 모호하게 떠 있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 지면에 안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평안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진 <너머의 너머> 시리즈(2025) 중 일부에는 화면 상단까지 겹겹이 문 혹은 벽의 형상이 채워져 압박감을 고조시킨다. 결과적으로 규칙성과 불규칙성-변칙성, 정형과 비정형, 계획과 무계획이 모두 자신의역할을 하는 벽과 문 형상들의 중첩은 그 입구를 나가도 밖이 아닌,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미로를 완성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예측 가능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오가는 쉽지 않은 인간의 삶을 상징하는것 같다. 나무로 만든 평면적 입체 작품인 <너머의 너머>(2025)나 <아트 블럭: 너머의 너머>(2025)를 보면 삶의 시간과 시간이 이어지는 집과 집 같기도 하다. 예술의 시간을 은유한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이지연이 자주 말하는 놀이(터)와 같은 작품을 위한 것일지도모른다. 작업을 진행할수록 작가는 감상자가 논리와 직관을 총동원해 퀴즈를 풀 듯, 모험하듯 작품 속 상상의 공간을 들어서길 바라게 되었다. 어느 쪽이든 길을 찾거나 잃고, 좌절하고 실망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이 따른다. 계속 바라보니 생각과 감정, 기억이 쌓인 작가의내면이 아닌가 싶다. 문을 열고 열어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마음-머릿속이다. 답답한마음의 벽일 수도, 보호와 방어를 위한 벽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문-통로는 끝없이 만들어진다. 길을 만들어보려 했던 것일까, 미로 속에 숨겨 놓으려 했던 것일까, 궁금해진다. 잘아는 것 같고 잘 알 수밖에 없지만,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게 자기 자신이다. 나를 포함한무엇이든 언제나 전지적 시점에서 이해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안과 밖의 공간, 그 공간들을 나누는 선-길, 그 “너머의 너머”에서만들어지는 벽과 문, 그리고 그들의 경계와 연결고리에 틈을 “타고 가는 시간”이 모이고 모여 작품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이지연은 자기 내면의 공간과 외부의 공간이 서로를 자극하고 고무시켜 창작을 위한 상상이 발현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작가는,체험한 공간을 형상화하거나 시각적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그래서 외부의 무엇으로도 섣불리 한정되지 않는 ―그것이 마음이든 정신이든―깊은 어딘가에 파묻힌, 내적 공간의 울림이 필요했다. 이지연의 작품이 간결한 기하학적인 형상을 닮은 무언가로 귀결되는 것 역시, 조형적 정제와 함축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표현하기 불가능한 내적 세계를 담아두기 위해서이다. 간결할수록 펼쳐지는 상상의 가능성이 짙어진다. 작가는 선을 그어가며 정신과 마음에서부터 기억과 감정, 느낌, 시간에 이르는 붙잡을 수 없는 모두를 담는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을 동시에 생성하기를 반복한다. 한편 작품들이 보여주는 환영적 세계도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그 바탕이 캔버스든전시장의 벽이든, 라인 테이프를 붙이든 물감으로 그리든, 작가는 공간을 구축하고 환영을그려낸다. 기하학적 추상화에 가깝지만, 환영을 제공하는 그림이다. 환영인데 추상이다. <심심한 산책>(2020)을 회화의 프레임 안에서 실험한 것으로 보이는, 다섯 겹의 종이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층층이 이어지는 <공간 드로잉 No. 68-72>(2025)에서는 환영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건축적으로 세워지는 공간은 그 안에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그러나 균일하게 칠해진 면은 이내 공간의 깊이에 빠져드는것을 방해한다. 평면이라는 사실을 잊게 하는 동시에 평면임을 부각하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확장하기를 넘어 반전을 제공하는 공간과 그것을 경험하는 동안 흘러가는 시간이 서로를 감싼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가는 실재하는 공간에 위치하는 벽―때로는 바닥과 천장까지도―, 즉 실재하는 세상의 일부를 환영으로 바꿔 실재와 환영을 교차시키고, 공간의 유한성과 무한성을 탐구한다. 모든 공간에는 그것을 지각하는 중심인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주체가 누구이든 경험되는 공간은 중립적일 수 없으며 주관성과 상대성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한정적일 수 있지만,4) 상상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지연은 더욱 자신이 공간에 위치하고움직임으로써 일어나는 변화, 공간을 감각하고 경험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럴수록 궁금증과 호기심이 커진다. 작가의 내면에는 “늘 궁금한 ‘다음’에 대한 설렘과 의문”이 생성된다.5)그 종착지가 어떤 모습일지, 그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작가도 예측할 수 없다. 지금은 그저 이 모든 상황과 발생하는 변화를 즐기며 받아들이려 한다. 그것으로 충분히 즐겁다. 유의미하다. 1)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곽광수(역), 동문선, 2003, p. 342.2) 이지연, 「작가 노트」 2018, 『이지연 포트폴리오 2003-2023』, 2024, 페이지 미기재.3) 이지연, 위의 글. 4)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김덕현, 김현주, 심승희(역), 논형, 2022, p. 43.5) 이지연, 「작가 노트」 2015, 2023, 『이지연 포트폴리오 2003-2024』, 페이지 미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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