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문 초대전 : 파수

파수 | 강석문 작가노트 나무 사이사이에 조용히 숨 쉬던 새들이 새벽부터 요란하다. 덕분에 모든 생명들이 그들의 짹짹거림에 덩달아 아침을 연다.푸르고 깊은 하늘은 옆집 아이의 발그스런 볼처럼 따사롭게 물들고 창밖엔 내가 이름 붙여준 이군, 박군, 까양, 오양, 구리양 등 동네 터줏대감 아는 새들과 첫인사를 한다. 어제의 생과 사 경계 속에서 오늘 아침도 용케 살아있음을 서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들 중 동네 최고 가수 휘파람새의 멋진 노랫소리와 가무에 아침부터 나무와 꽃, 그리고 나도 흥이 난다. 동네 모든 새들도 모두 휙휙 잘도 흔들고 날아다니다. 나도 찰나 하늘을 날 수 있음을 뽐내지만 오랜 시간 비행 할 수 있는 새들을 언제나 동경한다.그들의 공중부양!중력을 거부하고 땅 위를 떠오를 수 있는 생명은 언제 보아도 신비롭고 예사롭지 않다. 조물주가 만든 중간계의 최고 걸작이다. 하늘 꼭대기에 계신 신들께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어 너무 부럽다. 후생엔 인간이 아닌 눈에 잘 띠지 않게 높이 오르는 새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적 있다.가끔 엄마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땐 새들처럼 훨훨 날아오르고 싶다. 그럴때면 가끔 까치에게 마음의 편지를 부탁하곤 한다. 그러곤 감사의 표시로 호두 몇 개와 씨앗들을 모이통에 넣어둔다. 아침 식사 후 차 한 잔 하고 있는데 떨어져 사는 아이에게 급한 전화가 왔다. 뭘 잘못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배탈이 나 밤새 고생했다고 한다. 병원에 뛰어 간다고 해서 매실청 먹으면 금방 나을 것이라고 해도 믿지를 않는다. 알아서 하겠다고 하여 더 이상 참견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론 당장 가봐야 하나 마음속이 안절부절못하다. 중요한 시험이 코앞인데 별일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마당에 나와 괜히 서성이니 처음 보는 새(아마도 굴뚝새)가 별일 아니니 걱정 말라고 나무 사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래전 아버지 어머니께서 급체한 어린 나를 업고 동네 침 잘 놓는 할아버지께 뛰어가 거대한 큰 바늘로 손마디 마디 따금하게 찔린 기억이 아직도 코끝까지 따끔거린다. 마당에 나온 김에 이곳저곳 이름 모를 풀들도 뽑고 넘어진 꽃들도 보듬고 세우고 밑에 집에서 얻어 온 옥수수와 고추도 다듬었더니 해가 하늘의 한가운데 떡하니 있다. 땀도 한 바가지쯤 흘리고 딱새도 더위 먹지 말고 이쯤 그만 정리하라고 딱딱거린다. 큰 돌에 잠시 앉아 숨 좀 돌리는데 깜짝이야! 돌틈 그늘 사이로 일 년에 한번쯤 만나는 빨간 능구렁이 한 마리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무슨 복이 들여오려나? 얼른 시내 나가 복권이라도 사야겠다. 점심에 옥수수와 감자를 일곱 개쯤 먹으니 배가 청개구리 배 마냥 뽈록하다. 평소 같으면 아침부터 작업 시작하는데 오늘은 많이 늦어 조바심이 난다. 나이가 드니 시간이 금이다. 소중한 시간 아껴 쓰고 뜻 깊게 써야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으니 최대한 지키기 위해 노력중이다. 화실엔 어제 펼쳐 둔 찹쌀풀이 하루도 안 되어 곰팡이가 피어났다. 날이 39도에다가 중간 중간 습한 소나기에 뭐든 빨리 쪼끄라 들고 썩어버리는 날씨이다. 그래도 화실에 집사람이 놓아준 냉온풍기로 숨 쉴만하다. 전기세는 내일 모레 걱정하고 우선 이 더위에 살아남아야 한다. 쓰디쓴 흑색 커피를 한 잔 내리고 드디어 붓을 든다.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무식한 것이 원인이다. 젊어 공부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에 아들의 국어교과서를 최근 듣기 시작한 멘델스존의 한 여름 밤의 꿈을 틀어놓고 몸을 뒤척인다. 아무 생각 없을 땐 새 한 마리 그리는 게 금상첨화이다. 아침에 찰나의 순간처럼 휙 하고 지나간 새를 종이에 그려 본다. 생생함이 없어 보여 덮어 버리고 그 위에 또 새 한 마리 그려 본다. 마음에 들지 않아 또 덮어 버린다. 나름 직업 화가인데 아직도 그림은 어렵다. 오늘은 기어이 명작 하나는 종이에 새겨볼 양 열심히 그어본다. 하얀 종이만 얼룩덜룩 쌓여간다. 오후 두 시 사십 분! 눈이 뜨겁다. 다 녹일 듯 정원 꽃들이 흐믈흐믈하게 늘어진다. 내 눈도 흘러내린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 하며 날카로운 붓을 드는데 붓의 무게가 억만 근이다. 졸지말자! 졸지말자! 혼잣말에도 꿈인지 생시인지 이미 종이에 새 한 마리 편히 들어 앉아 꾸벅꾸벅 같이 졸고 있다. 해가 서쪽 제일 높은 산꼭대기부터 조용히 산을 파고 들어가고 있다. 해도 졸린가 보다. 나의 세상도 주홍빛에서 포근한 흙색으로 서서히 변해간다.박군과 지빠귀군도 집 울타리 개나리 성긴 가지가지 사이와 처마 끝, 굴뚝, 지붕으로 들어간다, 모두 완벽한 매복이다.마치 어둠으로부터 조용히 나와 나의 집을 지켜주는 파수꾼 같다. 모두에게 안녕을 기원하고 저녁 인사를 나눈다. 이제 밤이 별보다 높다. 앞산 어둠이 깊을수록 수줍은 소쩍새 울음소리가 청량하게 산을 울린다. 생각해보니 오늘 제일 많이 만나고 대화한 상대가 새들이었고 아마 내일도 그럴 것 같다. 별일 없는 내게 그들이 옆에 있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다.혹시나 그들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면 무슨 희망으로 살까? 하는 생각에 슬픔이 흐릿한 별빛처럼 흐른다. 내일은 호두를 더 많이 까야겠다. 달빛 깊게 물들 때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들고 읽었다.적당히 나이가 들면 세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의문투성이고 오류투성이고 서툴다. 주인공 샐던의 꿈이 아이들의 파수꾼이라면 나는 행여나 날개가 있어도 추락하는 새가 있다면 그들의 파수꾼이고 싶다. 그들이 언제나 나를 조용히 지켜주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나 평안하기를 위해 기도한다.나의 기도가 하늘 끝에 전해지길 바라며 산속 깊은 부엉이 소리에 나도 잠이 들다. 아침 댓바람부터 새 한 마리 높은 나무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그러곤 집 주변을 동그랗게 돈다. 박군, 권양이 아닌 낯선 새이다, 부리가 빨강이고 날개가 파랑이다.와아 ! 놀랍게도 진짜 파랑새이다. 파랑 빛이 하늘에 파랑거린다.오늘 만드는 따스한 새종이에 얼른 담아야겠다. 2025년 8월 1일 강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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