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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닮음들을 위해 | 유미주 비평가 패턴은 반복된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반복되어야 패턴으로 존재할 수 있다. 형태 하나가 단순히 존재할 뿐이라면 그것은 그 어떤 견고한 형상이더라도 패턴으로 존재할 수 없다. 같은 형상이 반복되고, 복제되어 퍼져나감이 존재하여야 패턴으로 존재할 수 있다. '같음'과 복제는 패턴의 본질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생태계 안에서 이러한 '패턴'이 발현될 때에, 모든 패턴은 서로 매우 닮았으나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매번 변화한 형태로 증식한다. 즉, 같음과 복제라는 본질은, 생태계 내에서 닮음과 증식이라는 본능으로 변주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윤주원의 작업에서 패턴들이 조금씩 형태와 형식을 바꾸며 등장하는 이유이다. ◼윤주원의 개인전 《잎의 결 GYEOL - Leaves•Time•Memory》에서 대부분의 회화 작업은 조경식물의 잎 형상을 따와 판화로 평면화하며 시작한다. 원형 캔버스 위에 잎사귀 이미지를 뒤집어 이미지를 수 번 찍어내고, 그 위에 다시 한 층의 잎 레이어가 새로운 종이에 그려져 캔버스에서 튀어나온 채로 붙어 있고, 그 위에 다시 한 겹의 레이어가 붙어 있다. 혹은 <여섯잎의 순환 : 공명>처럼 원형 캔버스는 배경으로만 존재하고, 캔버스 위에 덧붙여진 종이 레이어 수 겹들로만 이루어진 작업들도 있다. 이 <여섯잎의 순환> 시리즈에서 그려진 잎사귀 이미지들은 각각의 패턴을 갖고 있으며, 그 패턴은 한 작업 내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그 반복은 점점 캔버스 바깥으로, 입체로 튀어나가고자 한다.◼따라서, 윤주원의 개인전 《잎의 결 GYEOL - Leaves•Time•Memory》에서 대부분의 작업을 차지하는 <여섯잎의 순환> 시리즈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와 그리고 그것들이 캔버스의 평면에서 튀어 나와 점점 하나의 부조 혹은 입체처럼 존재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하여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이 전시와 대면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기하학에서 타일덮기(Tessellation)나 프랙탈(Fractal) 등을 통해 드러나는 패턴들은 원형과 완전히 똑같거나, 원형의 닮음비를 유지한 채 새로이 형성된다. 그러나 그러한 기하학의 세계는 생명체의 세계 즉 생태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생태계에서는 천의무봉의 타일덮기, 완전무결의 프랙탈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패턴 내에서 모든 유닛들은 사소하게 다르며, 각 짝들이 지니는 그 차이들 또한 서로 다르다. 이것은 생명체의 본능이다. 한 종(種)이 서로 완전히 같은 유전자 패턴을 지니면, 그 유전자 패턴을 공략하는 외부 세력이 등장했을 때에 그 종은 절멸하고 만다. 따라서 현상계의 모든 종은 하나의 종으로 존재하기 위해 매우 유사한 유전자 패턴을 공유하나 개체별로 아주 사소한 차이를 둔다. 이것이 생명의 본능인, 제1의 생존 전략이다. 윤주원의 회화는 이러한 생명체의 본능을 아주 잘 이해하고, 드러내는 듯하다. 판화의 이미지에서 한 레이어가 더해질 때마다, 기존의 형태와 닮은, 그러나 약간은 다른 이미지가 증식하며 쌓인다. 이러한 반복이 한 작업 내에서 수 차례 이루어지고, 이 작업 자체도 다른 작업들로 증식되어 열 개가 넘는 회화 시리즈를 이룬다. 조경식물 내에 내재되어 있는 생태계의 본능을 시각화함으로써 윤주원은 수동적이라고 읽힐 수 있는 식물계의 능동성과 에너지를 주목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증식의 바탕이 되는 종이 자체가 이미 순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윤주원이 판화 작업에 사용하는 종이의 상당수는 이전 작업에서 남겨진, 버려질 뻔했던 잔여물을 다시 거두어들인 재생종이다. 한 작업에서 소진되고 남은 흔적이 폐기되지 않고 다음 작업의 바탕이 되어 새로운 잎사귀를 받아 안는 이 과정은, 작가가 화면 위에서 구현하는 '닮음의 증식'을 재료의 층위에서 고스란히 되풀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잎사귀 이미지가 판을 거듭할수록 조금씩 다른 얼굴로 쌓여가듯, 종이 또한 이전 작업의 시간과 흔적을 품은 채 다음 작업의 몸이 된다. 재료 자체가 순환하고, 기억하고, 시간을 겹겹이 쌓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판화가 '닮음'이 아닌 '같음'을 재현하는 매체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정당한 질문일 테지만 동시에 매우 피상적인 질문이다. 컴퓨터 내의 복사 붙여넣기를 제외하면, 현상계에는 완전히 동일한 이미지를 복제해낼 수 있는 판화 기술은 없다. (사실 컴퓨터 내의 복사 붙여넣기도 데이터 생성 날짜와 위치가 달라진다는 데에서 완전한 복제일 수는 없다.) 판화를 찍을 때마다 찍힌 잉크의 양과 종이의 흡수력 등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어떤 때에는 <여섯잎의 순환 : 번짐>처럼 아예 얼룩져 버릴 때도 있을 것이다. 원판을 공유한다는 데에서 한 이미지를 공유하는 판화들은 서로 매우 비슷하지만, 동일할 수는 없는 셈이다. 즉 판화는 '같음'을 복제하는 매체가 아니라, '닮음'을 증식시키는 매체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판화를 해온 윤주원 자신이 가장 민감하게 감각하고 알 터이다. 따라서 윤주원의 회화는 잎사귀를 그린다. 판화의 '닮음'을 그러나 서로 '다름'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가 생명이며, 그 중에서도 단순한 패턴의 반복처럼 보이더라도 모두가 서로 조금씩 다른 '잎'이기 때문이다. 잎사귀를 증식시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내용적으로는 생명의 본능을 시각화하는 일이자, 형식적으로는 판화의 본능을 시각화하는 일이다. 윤주원의 작업이 판화를 기반으로 한, 서로 닮은 그러나 서로 다른 생명들에 대한 예찬임을 깨달을 때 이 전시와 관객은 마주할 수 있다. ◼나아가 관객은 캔버스에서 패턴이 튀어나오는 이유, 그리고 점점 작가의 관심이 입체-도자로 향하게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본능이 증식일 때에, 한 자리를 차지한 개체가 있을 경우 다른 개체는 다른 장소에 가서 피어야 한다. 이것이 한정된 자원과 공간을 두고 살아남는 가장 자연스러운 전략이다. 따라서 윤주원의 회화에서는 캔버스 위의 가장 큰 잎새 위에 작은 잎새들은 평면을 빠져나와 3차원의 세계에서 활짝 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잎사귀들은 <순환> 시리즈가 되어 벽면을 채우고 <잎의 숨결> 시리즈가 되어 공간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이 <하나의 잎, 무한한 변주>로 끝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필연인 셈이다. ◼그러나 전시는 <하나의 잎, 무한한 변주>로 끝나지 않는다. 이후에 오는 것은 작가의 도자 기반 작업들이다. 윤주원은 <새겨진 시간> 시리즈를 통해 잎사귀를 찍어내고 그것을 구워낸다. 평면을 점유하던 잎사귀의 이미지가 다시 변화하여 입체 공간을 채워 나가는 동시에, 종이보다 훨씬 단단한 매체로 더 오랜 시간을 점유해 나간다. 윤주원의 도자 작업은 회화의 자연스러운 연장인 셈이다. 종이 위의 잎사귀가 판화라는 매체를 통해 '닮음'으로 증식했다면, 흙과 불을 거친 잎사귀는 이제 '시간' 자체를 새겨 넣은 채로 굳는다. 도자기는 판화보다 훨씬 오래, 훨씬 단단하게 그 형상을 지니고 살아남는다는 점에서, 이는 생명체가 택하는 또 하나의 생존 전략이자 증식의 후기 형태이다. 흥미로운 것은, 윤주원의 도자 작업에는 작은 클로버 무늬가 잎사귀 무늬 위에서 같이 찍혀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원본 잎사귀와는 무관한, 작가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암시하는 아예 외부의 것이다. 이 클로버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어머니와 함께 한강을 걸으며 네잎클로버를 찾아 헤매던 시간에서 온 것이다. 작가에게 그 작은 발견의 순간들은 슬픔을 견디는 일이자 동시에 위로받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잎사귀 위에 새겨진 클로버는 마치 아버지가 건네는 인사처럼 읽힌다. 이는 생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잎에게 건네는 인사이면서, 동시에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하다. ◼도자는 종이와 달리, 형태를 갖춘 후에도 구워내야 하는 절차가 별도로 있고 보관 또한 어렵다. 이때 잎사귀 위 클로버는 그러한 도자가 무사히 구워지기를 바라는 기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상실을 통과해 온 한 사람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떠난 이에게 건네는 다짐이자 인사에 가깝다. ◼전시의 제목이 드러내는 '결(結)'은 이러한 지점에서 드러난다. 윤주원의 작업은 나뭇잎 이미지 위에 새로이 찍힌 클로버 무늬 같은 결, 나뭇결이 나이테처럼 시간을 켜켜이 쌓아 만들어진 것 같은 결, 이 작은 결들을 섬세히 읽어나가는 일을 요구한다. 판화에서 회화로, 회화에서 도자로 매체를 옮겨가며 '닮음'을 쌓고 또 쌓는 일 또한 하나의 결을 이룰 것이다.그러므로 이 전시를 마주한다는 것은 잎사귀 하나하나의 미세한 차이를 읽어내는 일인 동시에, 재생종이처럼 되풀이되어 몸을 바꾸는 재료의 결과, 판화에서 도자로 옮겨가며 쌓인 시간의 결, 그리고 그 위에 조용히 얹힌 네잎클로버 같은 기억의 결을 한 결씩 풀어 헤치며 읽어 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잎의 결 | 윤주원 작가노트 내게 잎은 자연의 축소판이다. 같은 종의 잎이라도 같은 잎은 하나도 없다. 잎맥이 뻗어가는 모습도, 벌레가 남긴 흔적도, 계절을 지나며 변해가는 색도 모두 다르다. 짧은 생을 살아가는 잎 안에는 질서와 순환,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래전 자연의 문양과 반복에 끌렸던 관심은 결국 잎으로 이어졌다. 처음 잎에 마음이 간 것은 그 모습에서 내 삶의 한 부분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잎을 오래 바라보고 작업할수록 그 안에서 나의 삶뿐 아니라 저마다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게 되었다. ◼ 하나의 잎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 같은 형태도 겹치고 연결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구조는 자연스럽게 공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작업의 바탕에는 오랫동안 몸에 밴 판화적 사고가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어떤 재료와 기법이 적합한지, 어떤 순서로 진행할지, 평면에서 공간으로 어떻게 확장할지를 머릿속에서 여러 번 시뮬레이션한다. 판화의 복수성 역시 같은 이미지를 에디션으로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구조로 확장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한 장의 판화는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단위가 되고, 반복된 이미지는 겹치고 연결되며 입체와 설치, 모빌로 이어졌다. 내 작업은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투명한 레이어를 한 겹씩 쌓고, 실크스크린의 한 도를 찍은 뒤 다음 도를 올리고, 회화에서는 재료와 색을 쌓은 뒤 다시 조각도로 파낸다. 각각의 과정에는 기다림이 필요하고, 그 시간이 겹쳐 하나의 화면이 된다. 이전에는 색의 조합과 배열에서 생기는 시각적인 효과에 관심을 두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색의 역할을 줄이고 잎의 구조와 형태, 선에 더 집중했다. 색을 덜어내자 잎의 구조와 조각도로 파낸 선, 화면에 쌓인 재료의 흔적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판화 작업 후 남은 종이는 버리지 않고 다시 풀어 재생종이로 만든다. 한 번의 쓰임을 다한 종이는 새로운 작품의 재료가 되고, 이전의 흔적을 품은 채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내게 순환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품은 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나는 잎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실크스크린으로 잎을 찍고 오려 쌓아가는 작업을 오래 해오면서, 어느 순간 잎이 살아온 모습을 온전히 기록하고 싶어졌다. 땅에 떨어지거나 가지치기로 생을 마친 잎을 흙 위에 압착해 잎맥과 표면의 흔적을 남겼다. 잎 자체가 하나의 판이 되어 그 모습이 흙으로 전사되는 과정은 내가 오랫동안 해온 판화의 행위와도 닮아있다. 잎은 흙에서 나고 결국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잎이 지나온 시간과 흙이 도자가 되어가는 시간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난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어머니와 한강을 걸으며 수없이 많은 네잎클로버를 찾았다. 그때 우리에게 네잎클로버는 행운이 아니라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견뎌 낸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을 다한 잎 위에 네잎클로버를 새긴다. 제 시간을 다 살아낸 잎에게 “수고했다, 잘 살아냈다”고 건네는 작은 인사이자,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잎의 결(GYEOL)」에서 ‘결’은 잎맥만을 뜻하지 않는다. 화면 위에 켜켜이 쌓인 층, 조각도로 파낸 자국, 흙에 새겨진 잎맥처럼 서로 다른 재료와 방식에는 모두 지나온 시간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재료 위에 쌓이고 새겨진 시간이 내가 말하는 ‘결’이다.잎을 오래 바라보고 작업하면서 사람 역시 살아온 시간과 겪어온 일, 기억이 쌓여 저마다의 결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내가 잎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자연의 형태만이 아니라 그 안에 비친 사람의 삶이다. 내 작업이 그 삶에 건네는 작은 존중과 인사가 되고,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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