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회상(Recall,Illusion) 박은덕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고유한 시간을 가지고 있고, 머물고 있는 공간적 범주에 한정되지 않고 사유작용을 일으킨다. 누구나 객관적인 시공간안에서 생활하지만 나를 둘러싼 시공간안에서의 정신적인 사유와 인식의 차원은 각자마다 다르다. ‘인간은 공간을 지성으로 인식하고 시간을 직관으로 인식한다고 한다’고 말한 현대 철학자 베르그송의 말처럼, 이는 특정 공간이 개인에게 제공하는 경험이 시각적이면서도 감정적으로도 세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늘 일상 속 마주치던 공간일지라도 관찰자의 시선과 시간의 순서의 역전에 따라 느껴지는 시공간의 감정은 각자의 고유한 기억을 부여한다. 이러한 주관적 시공간안에서는 무한한 존재가 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사고의 출발에서 나의 포토꼴라쥬 작업은 시작된다.
내가 경험하고, 직접 찍은 사진들은 단순한 시간의 기록이 아닌,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가며 현실과 허상사이를 허물어 탐색하고, 자유자재로 나의 생각을 응축시키고 확장시키기도, 단절 시킬 수도 있는 도구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사진에 담겨진 현실들은 어떠한 기억도 절대적인 시간, 공간과 분리될 수는 없지만 싯점에 따라, 경험한 공간에 따라 상상과 현실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시간여행으로 유도되어 다층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여행은 물리적인 신체의 공간이동을 넘어 허상 속의 시간여행을 경험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우리는 자신의 위치에 따라 시간과 공간을 다르게 느끼며, 공간 속에서 기억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존재의 의미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도시의 과거의 흔적이 담긴 공간이나 건축물은 다양한 시공간의 기억을 제공하며, 원래의 기능을 잃은 건물이 새로운 역할을 맡거나, 그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이 변화하게 되면 공간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낯선 이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개개인의 시간과 마주하는 여행을 통해, 시간과 공간은 고정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변화해가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스쳐간 사람들, 새, 나무,꽃들 같은 자연물과 그들의 삶 속 시공간마저도 작품의 의미를 구성하는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새들의 저마다의 내재된 이야기를 중첩시켜 엮어내어, 서로 다른 시공간이 만나는 지점이 또다른 나를 형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어감을 보여주고자 한다. 경험 속에서 중첩된 기억들은 화면안에서 우연적으로 때로는 우발적으로 왜곡되거나 해체되기도 하고, 의도치 않는 공간과 접합되면서 기억의 진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의 존재는 시간에 종속되지 않고, 그보다 더 깊고 무한한 경험의 맥락에서 공간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사진매체를 이용해 리얼리티를 기록하고 기억하지만 디지털 처리과정을 사용한 회화적인 가공을 통해 허상일지도 모르는 회상을 자아내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이, 실재적 시간을 너머 관념적이고 상관적인 시간까지도 확장시켜 표현되어 감상자들에게는 자신의 기억과 연결되어 따뜻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사유적 공간으로 감상되기를 기대한다.
박은덕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프린트아카데미에서 3년간 석판화와 판화연구과정을 수료한 후, 판화작업으로 활발한 전시활동을 시작했다.
90년대 후반 런던 CSM의 Summer Short Course에서 포토샵과 페이퍼메이킹코스를 수강하면서부터
판화의 복제적 특성을 디지털 기술과 접목시키는 작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사진, 스캐너,복사등 다양한 복제 매체를 이용하거나 직접적인 꼴라쥬를 사용하기도 했던 초반작업에 비해, 현재는 직접 찍은 사진을 디지털 도구만을 이용한 포토꼴라쥬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카메라나 컴퓨터의 미디어가 가진 다소 차가운느낌을 대체하기 위해 디지털 작업형식을 통해 회화적인 가공을 덧입히는 회화적사진을 지향하고 있다.
카메라는 어떤 존재의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의미가 크다고 한다면 , 그 시각적 이미지로 파생된 작가만의 감정과 상상으로 복합된 시공간이 담겨진 사진으로 재해석하고 탐구한다.
현실 속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이나 상상과 결합된 기억착오를 형상화시키는 작업을 통해 사진 속 현실을 상상 속 이미지로 시각화하고 있다.
개인전 10회
작품소장 : 법무법인 K1 Chamber, ㈜엠파워시스템, ㈜예진F&G, 렉서스 인천전시장, 그 외
허상회상2502 - 박은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