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 MeME
상명대학교 만화 예술 학사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석사 수료
개인전 (10회)
2019 디자인 아트페어 개인부스,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서울
2020 MMMM EXHIBITION 개인전 더월 갤러리, 이태원
2021 Smile Again 맨션나인 갤러리 방배동
2022 Dreaming Peace 초대개인전 L7롯데호텔
2022 FIND THE LAST NRVERLAND 맨션나인 갤러리 방배동
2023 LOVE ME BANK 갤러리41, 삼청동
2024 U got this ! 희림건축, 갤러리라루나, 청담동
2024 Happy Tasting Bar 포스코이앤씨 더샵갤러리 초대개인전, 자곡동
2025 PIGME BANK 우리은행 투체어스 W 초대개인전 , 도곡동
2026 WANTED_ 스페이스 엄
단체전 및 아트페어 (50여회)
2025 화랑미술제, 아트 부산, KIAF SEOUL, DIAF
Affordable Art Fair Singapore,
ART Miami Aqua
MORA MUSEUM OF INTERNATIONAL ARTS, 뉴져지, USA
그 외
수상이력
2022 제 42회 국제현대미술대전 동상
2022 이탈리아 아트페스티벌 서양화 특별상 수상
2022제 44회 PACF 디자인 은상 한국서화협회
2022 제 44회 PACF 서양화 동상 한국서화협회
2023 노머니노아트 4회차 우승, 최종 파이널 4인 작가 선정
주요소장처
SK D&D , 삼성전자 , 하나은행 수장고 하트원, 박세리 박물관 세리팍 위드 용인 ,
세레니티CC, 직스테크놀로지 , 영은미술관 , 우리은행, 대웅제약,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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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MeME) 작가평론_PIGME의 세계관과 욕망의 양가성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성균관대박물관 학예실장)
프롤로그 PIGME의 첫인상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하트 고글을 쓴 작은 돼지의 표정이다. 둥근 몸, 길게 자란 귀, 조심스럽게 다문 입, 그리고 달콤하게 부풀어 오른 표면. 미미의 화면은 처음에는 가볍고 사랑스럽게 다가오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세계가 단순한 귀여움의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된다. PIGME는 상처가 없는 세계가 아니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자신을 선택하기 위해 만들어낸 세계다. 그래서 이 작업의 핵심은 위안 그 자체보다, 위안을 필요로 하게 된 내면의 상태를 어떻게 다시 읽어낼 것인가에 있다. 미미라는 이름에도 이 태도가 분명히 새겨져 있다. “Problem Me, Solution ME”라는 명제는 문제와 해결이 모두 자기 내부에서 시작된다는 자각을 품고 있다. 현대사회의 경쟁, 비교, 타인의 시선은 바깥에서 밀려오지만, 그것이 상처로 굳어지는 장소는 결국 자기 내면이기 때문이다. 미미는 이 지점을 회피하지 않는다. 자존감의 균열, 학습된 행복에 대한 의심, 남이 정해준 삶의 순서를 따르며 희미해진 주체의 감각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그 흔들림을 PIGME라는 자화상으로 변환한다. 이때 PIGME는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라, 결핍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 결핍을 다시 살아갈 힘으로 바꾸려는 치유의 미학이다. 미미의 세계관은 결국 나를 다치게 한 현실을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그 현실을 견딜 수 있는 감각과 시선을 새로 만드는 방식으로 성립한다. ◆ 이 작업을 읽는 데에는 세 개의 단단한 철학적 축이 있다. 듀이(John Dewey, 1859-1952)의 실용주의 미학은 작품을 결과물보다 경험의 사건으로 보게 하고,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의 현상학은 물성과 촉감이 어떻게 정서를 몸으로 옮기는지를 설명해 준다. 리쾨르(Paul Ricoeur, 1913-2005)의 해석학은 자아가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질문과 충돌, 재구성을 거쳐 갱신되는 이야기임을 드러낸다. 미미의 작업이 잘 읽히면서도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작업은 보기 좋은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감각과 경험, 서사의 층위를 함께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1. 욕망을 다시 묻는 자화상 미미의 작업은 자존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자화상이다. 회사와 가족, 사회 구조 속에서 나라는 주체가 점점 흐려지고, 성실하지만 공허한 일상이 익숙해질수록 미미는 스스로에게 정말 행복한가를 묻게 되었다. 그 질문은 단순한 감정의 확인이 아니라, 지금 붙들고 있는 행복이 과연 나의 선택인지에 대한 점검이었다. 퇴근 후 그림을 그리고, 작은 공간에서 직접 전시를 만들고, 회사의 이름이 아니라 미미라는 이름으로 관객의 반응을 받아내는 과정은 작가에게 삶의 선택권을 되찾는 경험이 되었다. 여기서 행복은 밝은 기분이 아니라 주체를 회복하는 데서 따라오는 감각이 된다. PIGME가 미소 짓는 이유는 세상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다시 나를 선택하려는 의지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자화상은 신체의 상징으로 더 선명해진다. 돼지로 태어났지만 토끼처럼 길게 자란 귀와 작아진 입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과민한 감각과 쉽게 말하지 못하는 위축을 드러낸다. 미미는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에는 쉽게 애정을 보내면서도 돼지에게는 좀처럼 호의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작업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덜 사랑받는 존재를 자기 서사의 중심에 세우는 역전이 일어난다. PIGME는 사랑받기 쉬운 존재를 그린 캐릭터가 아니라, 사회적 선호의 바깥에 있던 형상을 다시 의미 있는 존재로 호명하는 장치다. 그러므로 미미의 작업은 귀여움을 생산하는 작업이기 이전에 콤플렉스를 재해석하는 작업이며, 욕망의 표면을 다시 쓰는 작업이다. ◆ 이 질문이 가장 첨예하게 모이는 곳이 <WANTED> 연작이다. 처음의 <WANTED>가 하트 고글로 바라본 행복한 순간을 붙잡아두는 형식이었다면, 시간이 흐르며 이 시리즈는 행복의 이미지보다 욕망의 구조를 묻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WANTED 28: Dream of my life>, <WANTED 39: Me time>, <WANTED 40: Forest of ART>와 같은 작품들은 밝고 산뜻한 화면을 펼쳐 보이지만, 실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욕망이 정말 나의 것인지 되묻게 만든다. 컬렉터와 시장, 해외 아트페어가 반복해서 <WANTED>를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 미미는 행복을 박제하는 작가인 자신이 과연 행복한가를 되묻는다. 이 되물음이야말로 미미 작업의 전환점이다. <WANTED>는 이제 행복의 포스터가 아니라 욕망의 근원을 묻는 질문지가 된다. 리쾨르는 이에 대해 “시간은 이야기의 방식으로 조직될 때 비로소 인간의 시간이 된다. (Time becomes human time to the extent that it is organized after the manner of a narrative.)”고 표현함으로써 미미 작업의 길잡이를 자처한다. 미미에게 자아는 한 번 완성된 정체성이 아니라 계속 다시 써야 하는 이야기다. <WANTED>에서 질문이 발생하고, 이후의 작업에서 그 질문이 현실의 벽과 부딪치며, 다시 조합되고 확장되는 과정은 곧 서사 속에서 갱신되는 자아의 형식이다. 그래서 PIGME는 고정된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이해를 계속 다시 써나가는 서사적 존재이며, 욕망의 양가성은 그 서사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2. 네버랜드를 통과하는 감각과 치유의 미학 미미가 네버랜드 신드롬을 끌어오는 방식은 흔한 판타지적 도피와 다르다. 어린 시절 동물농장에서 보냈던 시간,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었던 밝은 감각은 작가에게 하나의 원형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미미는 그 시절을 단순히 그리워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네버랜드는 현실을 모르는 척하는 장소가 아니라, 상처 입은 자아가 다시 호흡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심리적 공간으로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 미미의 네버랜드는 회귀의 신화가 아니라 통과의 기술이며, 치유를 위한 쉼과 현실을 향한 복귀가 동시에 놓인 장소다. 이 세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하트 고글이다. 하트 고글은 현실을 가리는 필터가 아니라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비추는 렌즈에 가깝다. 지친 존재를 잠시 구름 위에 눕혀 쉬게 하고, 무표정한 하루를 무지개빛 장면으로 바꾸는 상상은 현실의 부정이 아니라 현실의 재배치다. 미미는 이 장치를 통해 피로한 일상에 작은 틈을 내고, 그 틈에서 다시 숨을 쉬게 한다. 동시에 하트 고글은 질문의 장치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이런 필터를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그 필터는 언제까지 필요한가. 바로 이 질문 덕분에 PIGME의 환상은 유치한 판타지로 떨어지지 않고, 위안과 비판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시각적 언어가 된다. ◆ 메를로 퐁티의 언어를 빌어 미미를 해석해보자. “몸은 세계를 갖는 일반적 매개이다.(The body is our general medium for having a world.)”라는 발언은 미미 회화의 물성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문장이다. 미미의 달콤한 마띠에르는 단지 예쁜 표면이 아니다. 조소를 오래 해온 작가에게 점성과 두께, 부피와 질감은 오래된 감각의 기억이다. 여기에 아이스크림, 케이크 크림, 젤리 같은 폭신하고 말랑한 촉감의 기억이 더해지며, 화면은 작은 행복의 촉각을 품게 된다. 반복적으로 올리고 말리고 다시 덧입히는 레이어는 감정을 덮어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감정이 가라앉고 층이 되는 시간이다. 관객은 이 두꺼운 표면을 눈으로 보면서 동시에 몸으로 상상하게 된다. 말랑한 감촉, 녹아내릴 듯한 밀도, 손끝에 닿을 듯한 표면은 정서를 시각에서 촉각으로 옮긴다. 치유가 단지 의미의 차원이 아니라 감각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미미의 화면에서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이 감각의 세계는 상징의 세계로도 이어진다. 미미에게 행운과 복은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결핍을 다시 조합하는 믿음의 구조다. 돼지코와 토끼귀는 부족함과 위축의 표지이면서, 동시에 다른 결핍과 결합할 때 새로운 상징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언어다. 해묘미의 상징이 여기에 더해지면 PIGME는 단순한 혼성 캐릭터를 넘어, 부족함이 오히려 좋은 기운의 구조로 변환될 수 있다는 믿음의 체계가 된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귀여움은 소비의 표면이 아니라 공존의 프로토콜이 된다. 약함을 감추지 않고, 서로의 약함을 통해 다시 힘을 만드는 구조. 미미의 치유는 바로 이런 관계의 윤리 안에서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3. 네오팝의 계보 위에서 다시 쓰는 세계 미미의 작업이 국제적으로 읽히는 이유는 팝의 형식을 차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형식을 통해 동시대인의 고독과 권태, 불안정과 자존의 문제를 번역한다는 점이다. 팝아트가 대중매체와 소비사회의 이미지를 미술의 전면으로 끌어올렸다면, 네오팝은 그 유산을 캐릭터, 장난감적 표면, 브랜드, 협업, 전시 경험의 확장 속에서 다시 조직해 왔다. 워홀이 욕망의 표면을 차갑게 증식시켰고, 제프 쿤스가 키치와 욕망의 광택을 극대화했으며, 무라카미 다카시가 캐릭터와 상품, 미술과 시장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밀어 올렸고, 나라 요시토모가 유년의 얼굴 안에 고독과 반항의 정서를 새겨 넣었다면, 미미는 이 계보 위에서 캐릭터를 자기회복의 장치로 전환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미의 미술사적 위치가 만들어진다. ◆ 미미는 네오팝의 언어를 분명히 계승한다. 선명한 도상, 반복 가능한 캐릭터, 협업과 확장에 열린 구조, 회화와 설치, 퍼포먼스와 디지털을 넘나드는 유연성은 모두 네오팝의 조건과 닿아 있다. 그러나 미미의 작업은 차가운 거리두기나 매끈한 소비의 반영으로 멈추지 않는다. PIGME는 상품이 되기 이전에 상처 입은 자아의 서사이며, 귀여움은 판매 가능한 표면이기 이전에 자존을 다시 세우기 위한 감정의 언어다. 그래서 미미의 작업은 네오팝의 계보 속에서도 정동의 밀도가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 동시대 미술의 문맥에서 말하자면, 미미는 캐릭터를 단순한 IP나 디자인 오브제가 아니라 회화적 사유와 감각적 치유의 매개로 끌어올리는 작가다. 네오팝이 소비사회의 욕망을 반사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욕망을 치유와 자기이해의 문제로 되돌려 묻는 작가라는 점에서 미미의 자리는 분명해진다. 정리하자면 미미의 위치는 네오팝의 언어를 빌리되 그것을 자기돌봄과 상호 돌봄의 윤리로 바꾸는 정동의 네오팝, 혹은 치유의 네오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존 듀이는 “지각하기 위해 관람자는 자기 자신의 경험을 창조해야 한다.(To perceive, a beholder must create his own experience.)”고 말한다. 이는 미미 작업의 확장성을 설명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BRICK>에서 벽은 단순히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다른 의미를 입힐 수 있는 표면이 된다. <BLOCK>에서 관객 참여는 작가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세계관의 핵심을 공유한 채 경험을 확장하는 방식이 된다. 라이브 드로잉과 퍼포먼스 역시 완성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만들어지는 시간을 관객과 함께 겪게 한다. 협업과 디지털, AI에 대한 태도도 같다. 미미는 손으로 쌓는 물성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동시대의 언어를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매체든 자존 회복과 결핍의 재해석이라는 축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분명한 금지선을 세운다. 이 원칙 덕분에 확장은 희석이 되지 않고, 매체의 변화는 곧 질문의 확장이 된다. ◆ 이 지점에서 미미의 작업은 네오팝의 다음 장면을 보여준다. 캐릭터가 더 이상 단지 유통 가능한 이미지가 아니라, 자기이해를 매개하고 관객의 경험을 조직하는 서사적 존재가 되는 장면이다. 그래서 <WANTED>, <BRICK>, <BLOCK>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연작의 변화가 아니라 한 작가가 욕망과 현실, 재구성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점점 더 넓고 깊게 써 내려가는 과정이다. 미미의 국제성은 바로 이 서사 구조에서 나온다. 동시대의 누구나 자기 욕망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현실을 어떻게 견딜 것인지, 상처를 어떻게 다시 살아갈 힘으로 바꿀 것인지 묻게 되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미미의 PIGME는 귀여운 캐릭터를 앞세운 위안의 이미지가 아니다. 상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상처를 다른 감각과 다른 서사로 통과시키려는 자기 구성의 미학이다. 이 작업은 도피와 치유 중 하나를 쉽게 선택하지 않는다. 네버랜드를 불러오되 거기에 정주하지 않고, 하트 고글을 쓰되 현실을 지우지 않으며, 달콤한 마띠에르를 펼쳐 보이되 욕망의 구조를 함께 묻는다. 그래서 미미의 화면은 잘 읽히지만 얕지 않고, 친근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미가 캐릭터를 통해 결국 사람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IGME는 작가의 또 다른 이름이면서,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흔들리는 자존과 회복의 의지를 비추는 거울이다. 네오팝의 계보 속에서 미미가 새롭게 차지하는 자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소비의 표면을 넘어 감정의 깊이로 들어가고, 귀여움을 넘어 치유의 윤리로 나아가며, 캐릭터를 넘어 서사적 존재를 만들어내는 자리. 미미의 작업은 그렇게 오래 남는 우리 안의 질문을 남긴다.
Cloudy Start, Lucky End - 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