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 | 엄윤선 (스페이스 엄 대표)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자신의 저서 <중력과 은총>에서 “자기중심성과 욕망, 권력의지, 필연성에 끌려가는 인간의 상태를 중력이라고 하고 이를 벗어나게 하는 초자연적인 빛을 은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2024년엔 서울대 미술관장 심상용 교수를 중심으로 한 석학과 예술가들이 이 책을 주제로 포럼을 열었는데 가장 주요한 내용은 창작자가 어디서 오는 영감을 받는지에 따라 – 땅, 중력에 이끌렸는지 혹은 하늘의 은총을 받았는지 – 그 결과물이 육체적 물질적 감각에만 의존한 저급한 창작물에 그치거나, 반대로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에게 기쁨과 긍정의 에너지를 주는 예술로 남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화가와 갤러리는 예술을 대중들에게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는 업종입니다. 갤러리의 위상과 작가의 성공은 작품 판매 성과가 판가름하고, 이 세상에서 진행되는 상업 전시의 99%는 평론의 극찬과 대중의 지갑을 열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미술시장은, 벽에 바나나를 붙여 놓은 걸 예술이라고 경매에서 90억에 낙찰한 것처럼, ‘다름’과 ‘감각’이 트렌드라며 기괴하거나 경박하거나 우스꽝스러운 걸 주목합니다. ‘중력’에 굴복한 듯 대중들은 빛과 은총을 따르는 작품들을 지루하고 재미없고 낡은 것으로 치부합니다. 그들의 시선과 손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관심을 갖게 해도 힘든 판국에 작가와 갤러리가 대중이 아닌 유일한 존재를 위해 은혜를 갈구하는 전시를 기획합니다. 처음도 아니고 벌써 7회를 맞은 신앙전 말입니다.
오롯이 하나님을 위한 전시 - 왜일까요. 첫째는 우리의 시간과 공간, 재능을 하나님께 십일조로, 향기로운 제사로 올리기 위해서, 둘째는 은총의 영감을 받은 예술이 무엇인지 선보여 하나님의 은혜가 빛과 소금처럼 가난한 모두의 마음을 풍성하게 채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온 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전시를 해보자는 의지는, 작품이 우리 손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영감이 하늘에서 내려왔음을 체험하며 감격하게 만듭니다. 이 전시의 모든 기획이 오롯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그 안에 공간과 작가에 대한 자랑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올린 번제이자 축제이며 우리 모두는 은혜를 받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십자가와 성경, 예수님의 발에 부은 마리아의 향유, 성만찬을 위한 빵과 포도주, 그 외에 직접적으로, 은유와 비유로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님의 사랑을 대변한 사물들을 재해석해 새로운 시각 언어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시대에 하나님의 사역에 쓰였던 사물들처럼 이 전시가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단순한 예술 행사를 넘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하늘의 은총에서 비롯된 창작의 힘을 증명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참여한 모두가 영적인 빛을 체험하고 감동을 함께 나누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향기로운 제사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린도후서 2:15)
성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상징과 비유가 등장한다. 그중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향기’에 비유한다.
작품 속 꽃다발은 이런 성경 속 상징인 “향기”를 구체적인 대상으로 나타낸 것이다.
꽃들에 둘러싸여 향기를 음미하고 있는 인물은 정면으로 성령의 빛을 받아 향기로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를 상징한다. 빛에 의해 희미해진 인물과 선명한 꽃의 대비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사람보다 그를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더욱 깊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리본에 새겨진 ‘Εὐαγγέλιον(Euangelion/유앙겔리온)’은 헬라어로 ‘복음’ 또는 전도자를 뜻한다. 눈을 감고 스스로 향기를 음미하며 동시에 향기를 전파시키고 있는 전도자처럼 삶 자체가 전도가 되고 예배가 되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작가 프로필
개인전 13회, 단체전 및 국내외 아트페어 20여 회 참여아트북 『샘주위의 태엽꽃』 출간, 비현실(2026)㈜이오에스, 라운드랩 등 작품 소장
생추어리_소녀 No.35 _ 몰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