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자리#3 - 안소영

700,000원
- 작품명 : 너의 자리#3
- 작가명 : 안소영

캔버스에 아크릴
33.4 x 24.3 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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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서문 <Gentle on My Mind> | 엄윤선 (스페이스 엄 대표)

 

안소영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우선 떠오르는 것은 소녀와 자작나무 숲, 그리고 특유의 군청색으로 표현한 배경입니다. 주인공인 소녀를 감싼 이 군청색은 안정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며 내적 감정과 깊은 사유를 끌어냅니다. 아침과 저녁 노을의 핑크색, 맑은 하늘의 스카이블루가 직관적이라면 군청색은 단순한 시간의 표현을 넘어 내면의 감성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시그니쳐 컬러로 어필해왔습니다. ■ 스페이스 엄의 초대전 <Gentle on My Mind> 에서는 초록색이 눈에 띕니다. “내가 너에게 갈게”라는 타이틀을 가진 초록색 배경의 작품들은 서로 만나지 못한 시간동안 쌓인 그리움의 정서를 초록의 숲과 들판을 거니는 소녀를 통해 풀어냅니다. 작가가 묘사한 그리움은 애틋하고 잔잔하지만 다시 만나기만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감정이 아닌 “내가 너에게 갈게”라며 그리움에 맞서는 적극성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만나러 가던, 혹은 다시 만나는 상상을 하던, 그리움에 대한 위로가 됨은 분명합니다.

 

안소영 작가는 리사 오노 Lisa Ono 의 Gentle on My Mind 곡을 듣다가 초록색의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리사 오노가 워낙 감미롭고 부드럽게 표현하기도 했고 Gentle on My Mind가 “마음의 위로(평안)이 되는” 으로 해석이 되니 초록색이 메인 컬러인 “내가 너에게 갈게” 연작이 말하는 오랜 그리움의 위로에 더없이 잘 부합됩니다. 동시에, 초록은 자연과 식물에서 유래한 만큼 생명과 재생, 힐링의 상징이자 시각적으로 안정감과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우연하게도 작가에게 영감을 준 음악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소녀가 찾아가며 다시 만남으로 ‘너’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리움이 기쁨으로 바뀔테니까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모든 작업은 <자기만의 여행>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녀는 숲과 바닷가를 거닐고, 새벽공기와 한낮의 햇살을 만끽합니다. 더러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숨을 고릅니다. 그 모든 여정동안 소녀의 감정이 차분함과 따뜻함의 균형을 유지하며 부드럽게 관객을 향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이 준 위로 덕분입니다. <마음에 잔잔히 머무는 풍경> 이라는 부제는 작품마다 담긴 안온의 감정이 모두의 마음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자기만의 여행, 마음에 머무는 안식처 |  안현정(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프롤로그: 방에서 여행으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가장 먼 여행이다.”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정신의 삶』

 

한나 아렌트의 이 문장은 안소영의 작업을 관통하는 하나의 축을 이룬다. 화면 속 소녀는 어디론가 떠나지만, 그 이동은 외부를 향한 확장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으로 되돌아오는 순환이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사유와 판단의 내밀한 작용을 ‘자기 자신과의 대화’로 규정했다면, 안소영의 여행하는 소녀는 내적 대화를 시각적으로 수행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설정한 ‘자기만의 여행’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 1929)에서 출발하지만, 단순한 공간 개념을 넘어선다. 울프에게 ‘방’이 여성 작가를 위한 물리적 조건이었다면, 안소영에게 ‘여행’은 시간과 감각을 통과하는 내면의 조건이다. 안소영의 여행은 특정 목적지를 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녀의 이동”이며,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이 작업에서 여행은 이동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며, 회화는 그 과정을 기록하는 감각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서구 미술사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재현의 대상이었다. 르네상스의 누드에서 근대 회화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시선의 객체로 존재했으며, 주체로서의 위치는 제한되어 왔다. 이러한 구조를 전복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페미니즘 미술과 이론의 등장 이후였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제2의 성』(Le Deuxième Sexe, 1949)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말하며, 여성 정체성이 사회적 구성물임을 드러냈다. 이후 루스 이리가레이(Luce Irigaray, 1930-)는 여성적 주체를 ‘타자의 거울’이 아닌 ‘자기 언어를 가진 존재’로 재정립했고,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1941-)는 여성적 감각과 언어의 독자성을 강조했다. 시각예술에서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의 자전적 신체 이미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의 기억과 트라우마의 조형화,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의 정체성 연출이 ‘여성’을 객체에서 주체로 이동시키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계보 속에서 안소영의 작업은 중요한 전환적 위치를 갖는다. 작가는 여성 신체를 전면화하거나 사회적 규범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소녀’라는 최소 단위의 존재를 통해 여성적 주체의 내면적 형성과 회복의 과정을 서정적 구조로 재구성한다. 이는 1970-80년대 페미니즘 미술이 전면에 내세웠던 신체 정치(body politics)와 정체성 투쟁을 내면화함과 동시에, 그 너머에 위치한 존재의 감각적 지속성을 탐구하는 새로운 국면이라 할 수 있다. 즉, 안소영의 작업은 여성미술의 외적 투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면의 감각과 존재의 지속성을 탐구하는 ‘후기-내면적 여성미술’로 규정할 수 있다.

 

1. 집과 소녀, 자연의 물질성

 

안소영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구조는 ‘집’과 ‘소녀’의 변증법이다. 초기 <집, 안식처> 시리즈에서 집은 불완전한 사각형 위에 놓인 불안정한 구조로 등장한다. 이는 물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심리적 균열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집은 점차 내부로 이동한다. 2023년과 2024년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집은 더 이상 외부에 놓인 대상이 아니라, 내면으로 통과하는 통로로 변한다. 문이 열려 있는 집, 내부에 바다가 펼쳐진 집은 ‘공간’이 아닌 ‘상태’를 의미한다. ‘소녀’는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이자 보편적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이다. 이 소녀는 경쟁과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목적 없는 걷기’를 지속하며, 세상을 희망적인 시선으로 탐색한다. 이전 작품에서 소녀는 <자기만의 여행_노스탤지어>와 <시가된 풍경> 등을 통해 그리움과 상실의 정서를 담아내는 매개체였다면, 신작 <내가 너에게 갈게> 연작과 <응시> 연작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세계에 대한 집중적 시선을 획득한다.

 

그런데 이 ‘소녀’를 둘러싼 자연을 표현하는 방식은 소녀 자체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인 물질성을 지닌다. 동화적이고 온화한 소녀의 형상과 달리, 그 소녀가 서 있는 땅, 숲, 하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축적된다. 작가는 판화적 기법에서 비롯된 나이프를 사용해 수백 번에 걸쳐 물감을 덧대고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는 단순한 표현 기법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을 물질로 전환하는 수행적 과정이다. 이러한 방식은 한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 다시 말해 ‘나는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통제 불가능한 외부 세계를 자신의 손으로 쌓아 올리고, 또 벗겨내며 겨우 형태를 붙잡는 이 반복적 행위는 결국 축적된 시간 자체를 ‘자연’이라는 형상 위에 새겨넣는 작업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연은 결코 수동적 배경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물질적 주체로서 소녀 앞에 놓인다. 이러한 자연의 물질성 앞에서 소녀는 오히려 가볍게, 수평적으로 걸어간다. 거대한 물질의 축적 앞에서도 소녀는 그 위를 스치듯 지나가며, 세상의 무게와 자신의 존재를 대비시킨다. 작가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삶이라는 무거운 물질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위를 자유롭게 걸어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자연’의 표상 변화다. 이전 작가 노트가 “자연 속에서 스스로 치유하는 소녀”를 그린다면, 새 전시를 앞두고는 “깊고 푸른 새벽”에서 “숲이 우거진 따뜻한 푸르름”으로 시선을 이동시킨다. 이는 단순한 색감의 변화가 아니라, 고독한 성찰의 시간에서 온기 어린 위로와 회복의 공간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음을 의미한다. ‘동이 트기 전’의 경계적 시간에서 ‘마음에 잔잔히 머무는’ 평온한 풍경으로의 전이는, 작가의 내면적 여정이 치유의 단계에 더욱 깊이 도달했음을 암시한다. 즉, 자연은 작가의 내면이 외화된 결과이며, 회화는 그 변화를 기록하는 시간의 층위인 것이다.

 

2. 시리즈의 확장과 매체의 변주

 

안소영의 작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동일한 모티프가 여러 시리즈를 통해 끊임없이 재맥락화된다는 점이다. <집, 안식처>는 초기부터 이어져 온 가장 오래된 시리즈로, 2024년의 대작 <집, 안식처 10>과<Plastic city_Pink>의 병치는 현실적 공간과 이상적 공간, 혹은 도시와 자연의 긴장 관계를 보여준다. 이는 <동이 트기 전에> 시리즈가 대표하는 새벽의 고요와, <내가 너에게 갈게> 시리즈가 대표하는 그리움의 정서와 교차하며 풍부한 층위를 형성한다. 매체적 확장 또한 주목할 만하다. 2024년부터 본격화된 렌티큘러(Lenticular) 기법의 <되찾은 집> 시리즈는 집과 소녀, 혹은 두 개의 기억이 하나의 화면에서 겹쳐지며 ‘여행하는 자’와 ‘안식하는 장소’의 이분법을 해체한다. 이는 작가가 “물리적 공간인 집으로 갈 순 없지만, 마음에 평화가 생기니 더 이상 장소로서 안식처는 무의미해진다”고 고백한 지점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성과다. 하나의 화면 안에 복수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이 방식은 고정된 회화의 시간을 해체하고, 지각의 시간성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2026년 선보이는 <백지위임장에 관한 단상>(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의 <백지위임장> 오마주)은 이러한 확장의 정점에 위치한다. 마그리트 특유의 철학적 역설과 환상성을 차용하면서도, 안소영 특유의 동화적 색감과 소녀의 시선을 통해 ‘기억’과 ‘현실’, ‘이미지’와 ‘존재’의 경계를 다시 질문한다. 이는 작가가 ‘자기만의 여행’이라는 주제를 타자의 예술사적 텍스트와 대화시키며, 자신의 작업을 더욱 보편적인 층위로 확장시키는 시도다.

 

마그리트의 이미지가 인식의 문제를 제기했다면, 안소영의 화면은 감각과 기억의 문제로 그것을 전환한다. 특히 작가의 색채 감각은 이러한 주제적 확장과 물질적 수행성을 시각적으로 응집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동이 트기 전에>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군청의 깊고 맑은 푸른색, <내가 너에게 갈게> 연작을 관통하는 생명력 넘치는 초록의 향연, <안식처>와<Plastic city>에서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네온 핑크의 하늘, 그리고 <응시> 시리즈 곳곳에서 발견되는 다양하고 선명한 색채들은 모두 현실의 중량감과 희망의 경쾌함 사이에서 작가가 찾아낸 미묘한 균형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과감하면서도 정교하게 조율된 색채는 노동적으로 축적된 물질 위에 다시 한 번 ‘이미지의 가벼움’을 부여하는 이중적 전략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3. 노스탤지어를 넘어 자기 긍정으로, 그리고 여행 이후의 회화

 

초기 작업이 그리움과 상실의 정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최근 작업은 명확히 다른 방향을 향한다. 2026년 전시Gentle on My Mind는 그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제목이 암시하듯, 이제 기억은 더 이상 결핍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안정된 상태로 변화한다. ‘마음에 잔잔히 머무는’ 풍경은 더 이상 상실의 대상으로서의 그리움이 아니라, 내면에 이미 자리한 안식처로서의 평화를 의미한다. 소녀의 표정에서, 자연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작가 자신의 “환한 웃음”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인내한 삶’ 너머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치유의 에너지다. 여기서 주목할 변화가 있다. 초기 작업에서 작가가 ‘자기만의 여행자’로서 자신의 내면을 향한 선험적 탐색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그 시선이 점차 주변과 타인을 향해 열리고 있다. 이는 존재를 가볍게 하고, 스스로를 세계의 일부로 내어놓는 일종의 ‘해체’의 과정이다. 그 결과 화면 속 자연은 더욱 풍성해지고, 색채는 더욱 밝아졌으며, 소녀는 자연 속의 한 요소로서 더욱 편안하게 자리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세계의 무게와 분리된 ‘여행자’가 아니라, 세계 속에 ‘속하는 존재’로 다시 상상하는 이 전환은 작가의 작업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이 변화는 ‘자기 발견’을 넘어 ‘자기 긍정’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안소영의 작업은 ‘자기만의 여행’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지난 10여 년간 놀랍도록 일관된 궤적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 일관성은 정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변주와 확장의 과정 속에서 유지되었다. 초기의 불안정한 집에서, 자연 속을 걷는 소녀를 거쳐, 렌티큘러와 오마주를 통해 경계를 해체하는 최근 작업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여행과 안식, 기억과 현실, 고통과 치유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예리하게 탐구해왔다. 더불어 판화적 기법에서 비롯된 노동적 물질성과 동화적 이미지의 대비, 과감하면서도 정교한 색채의 미학은 이러한 탐구를 단순한 관념이 아닌 감각적 실체로 가시화하는 핵심 장치였다. 작가의 회화는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에 머무는가,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들을 축적해왔으며, 이 질문들은 결국 “안식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하나의 물음으로 수렴된다. 안소영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답한다. 안식처는 장소가 아니라 상태이며, 여행은 이동이 아니라 인식이며, 회화는 그 과정을 기록하는 감각의 언어라고.

2026년 전시 《Gentle on My Mind》는 이러한 여정의 현재적 지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다. ‘동이 트기 전’의 어둠과 기다림에서 ‘숲이 우거진 따뜻한 푸르름’으로, 타자를 향한 그리움에서 내면에 머무는 평화로,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안식처에서 마음 자체가 되는 안식처로, 이 모든 전환은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져온 질문 “왜, 무엇을 위해 작업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답변의 결과이다. 따라서 작가의 작업에서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변화가 있다. 이제 그 여행은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도착해 있는 상태를 인식하는 일이다. 안소영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자기만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며, 그 여행의 끝에 도달한 곳은 다시 또 다른 여행의 시작점이다. 다만 이제 작가는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미 와 있어서’임을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마음에 잔잔히 머무는 풍경, 그것이야말로 가장 오래도록 지속되는 유일한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식의 순간, 회화는 비로소 마음에 머무는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이 아닐까.

 

프로필

2004년 홍익대 미술대학교 판화과 졸업(BFA)

개인전 (12회),  그룹전 및 페어 (30여회)

 

수상

2025 오산시립미술관 <Show Con> 작가 선정

2025 제3회 대한민국 NFT 디지털 대전 우수상

2021 수호 신진 작가 선정

2019 SEEA PRIZE 2019 선정

2018 아트 경기 선정작품

 

소장   은성의료재단, 리 미술관, 수호갤러리, ㈜비롯,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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