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실바화분#210 - 조정은

2,000,000원
작품명 : 다실바화분#21

캔버스에 아크릴
72.7 x 53.0 cm
2020

* 작가와 갤러리가 서명한 보증서를 제공합니다.
* 작품사진을 클릭하시면 이미지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수량
품절된 상품입니다.
주문 수량   0개
총 상품 금액 0원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블로그
밴드

Something to Believe in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의 첫 장을 펼치면 나오는 문장이다. 안다는 것은 스스로 믿게 되는 무엇이다. 어린이의 믿음은 언어보다 우선되었지만, 교육은 압도적인 언어 체계로 그것을 지워나가며 자연과 문명, 사용자와 사물을 가른다. 그 안에서 우리는 주체적인 인식 의지를 잃어가기 때문에, 아이와 같은 눈을 유지하거나 스스로 발전시킨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에 대해 오히려 신기해한다. 여기, 아이와 같은 눈으로 작업을 하는 신기한작가가 있다. 이번에 <Falling in Things>라는 타이틀로 7번째 개인전을 여는 조정은 작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비교적 어릴 때(5-7)의 기억이 꽤 좋은 편이다. 내 상상의 원천은 어릴 때 했던 여러 가지 실험에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 땐 모든 것이 궁금했던 거 같다.”고 말하는 조정은 작가는 스스로 똑같은 꿈 여러 번 꾸기, 꿈에서 꼬집어보기, 꿈에서 놀다가 집에 간다고 하고 깼다가 다시 돌아가기 등의 꿈 실험을 모두 성공한 뒤, ‘자연 실험’, ‘몸 실험을 거쳐 사물 실험이 이르렀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사물이 살아있는 것 같은 상상에 설레며 그것을 그림에 옮길 때 상상이 실현되는 기분이 든다. 머나먼 저편 조정은 어린이의 세포들이 깨어나는 것 같다.”는 작가의 눈과 소통하기 위해 필자 역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난데없이 영어 문법을 스스로 이해해야 했던 분투기를 섞어보려 한다. 영어를 처음 배우던 시기 전치사를 함께 사용해야 하는 용어들에 대해 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고, 중등교육 과정에서 그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을 구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 중 하나가 believe 뒤에는 전치사 in을 붙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청소년기에 들어 어느 팝송 가사 중 “as long as we believe in love”를 듣는 순간 언어는 이미 오랜 마음의 철학을 녹인 것이어서 면밀히 따지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호기심과 난해함이 ‘in’이라는 한 글자를 가지고 의역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사랑을 믿다사랑 안에 믿다가 대치 관계여서 양자택일을 해야 할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그 이후에 세계나 관계들을 주체적으로 편집하며 이해해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무언가의 안쪽으로 연루된다는 것은, 처음에는 스쳐 지나가는정도에서 시작되었더라도 포착과 선택에 의해 그 대상을 자신의 세계의 안쪽으로 끌어들이는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in’은 단방향적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이고 주관적인 합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전시 타이틀인 ‘Falling in Things’에서도 ‘in’의 개념은 무척 중요하다. 무언가에 빠져든다는 것은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서 착지되는 것이 아니듯 우연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서의 만남을 체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여기서 체화(體化)라는 개념 역시 생각 따위가 몸에 배어서 자기 것이 되다는 의미도 있지만 물체로 변화하게 하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이중성과 쌍방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의 사물들을 기반으로 작업을 해 온 조정은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사물이 다시 새로운 사물이 되는 것에 대한 탐구이고 그가 어느 날부터 연루되기 시작한 것들에 우리를 연루시키는 초대의 행위이다. 그렇게 연루된 사람들 중 한 명인 필자는 재밌게도 조 작가를 만나기 전에 이미 같은 장소에서 해당 화분들을 보고 특이함을 느꼈던 터라 그 연루 또는 초대가 각별히 반가웠다. 그리고 작가노트를 통해 작가 스스로 무엇을 믿어왔는지가 더욱 분명해졌다.

 

쓰임새에 있어서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사물과 사물과의 만남은 친숙하지만 낯선 느낌을 준다.”

사물이 현실세계와 다르게 놓이고,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보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작가의 자기 분석 혹은 고백은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 이외에 각자가 세상 수많은 작가들과 그들의 작업들을 포함한 을 만나가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효용도 있다. 특히 이번에 아상블라주한 설치 작품까지 함께 전시된다고 하니 이전에 각각의 전시들을 지켜봐온 입장에서 더욱 반가운 소식이다. 수원 행궁동의 다실바 의상실 사장님이 폐품을 모아 만든 화분은 서로 다른 시간에 접한 것이었지만, 아마도 그곳이 한국의 대표적인 벽화마을 중 한 군데에 있고, 유명한 대안 전시 공간 앞이기도 해서였을 듯한데, 그러한 공간의 ‘coincidence’는 결국 공간 역시 하나의 커다란 사물이라는 점을 환기한다. 공간은 하나의 본질이기도 하지만 그 역시 언어이기 때문에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작가의 물활론적 생각들은 거기에 구속되지 않는다. 작가는 꿈, 자연, , 그리고 사물로 자신만의 인식 실험을 전개하며 그것에 대한 언어적 분절을 깨고 모든 것을 사물이라는 개념으로 믿어왔고, ‘사물 그림이라는 또 하나의 다른 사물로 체화한 듯하다.

 

이렇듯 일상 속 사물들을 레디메이드로 활용하면서 아상블라주를 보여주는 응용미술에서 작가의 통찰과 성실은 스스로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체계도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우리시대 예술의 영역에서 자유란 결국 기존의 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인식의 단계인 믿음그 자체가 된다. , 사물은 그 자체로 다른 의미를 띤 사물로 거듭될 수 있는 믿음의 대상이 되며, 여기서의 대상은 단지 관찰되거나 소비된 뒤 버려지는 대상이 아닌 새로운 찬미의 대상, 대화의 대상, 매개의 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사물이 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은 시간과 공간은 작가의 주체적인 해석과 변형, 조합의 과정 안에 하나의 스토리가 되고 미학이 된다. 우리는 그것에 연루되며, 그 이야기를 공유할 것을 기대하면서 그 사물과 작가의 일상이 만들어내는 무게감에 신뢰를 쌓아간다.

 

믿을 것이 별로 없는 시대. 이는 종교가 쇠퇴하고 신자유주의적 계급주의에 의해 많은 사물들이 물신화(物神化, Fetischisierung)하고 소비 주체들마저 대상화(對象化, objectification)되는 근현대적 결과였고, 예술품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앵포르멜 이후 최근의 다양한 관점과 작업들 속에서 콜라주와 아상블라주의 확산은 작가뿐만 아니라 예술 향유 대중에게 자유에 대한 새로운 믿음을 확보해가고 있다. 이는 모든 사물과 공간, 그리고 그 안에 연루된 주체들의 즐거움과 해석의 향연으로 초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소유와 계급보다는 존재와 시간의 의지가 우선되기 때문에, 전시장이라는 공동체적 공간 역시 건강한 사물로 부각됨으로써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예술에 대한 사랑을 믿는 한(as long as we believe in art), ‘스페이스 엄이라는 사물 안에 연루된 이번 전시와 그 안에 배치된 조정은 작가의 물활론적인 생각들이 구체화(具體化, materialization)한 또 하나의 사물(thing)’로서의 작품들은 참으로 믿을만 한 그 무엇(something to believe in)’이어서, 함께 빠져보게 된다.

 

 

/ 배민영(예술평론가, 컨템포러리 아트 매거진 [HOPPER] 편집장)

 

 

 

다실바화분#210 - 조정은

2,000,000원
추가 금액
수량
품절된 상품입니다.
주문 수량   0개
총 상품 금액 0원
재입고 알림 신청
휴대폰 번호
-
-
재입고 시 알림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블로그
밴드
floating-button-i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