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킴 작가노트: 직박구리 노트에 담긴 비밀노트
현실의 황량하고 무자비한 공기 속에서 느끼는 소외와 두려움에 지친 나는, 성인이지만 어린 시절 무념무상의 상태로 놀이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그립다. 정신적인 퇴행은 병리적인 치료 대상이겠지만 슬며시 그림으로 발현된 오랜 장난감들은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익숙한 사랑의 대상으로, 현실의 냉담함을 망각하게 하는 웜홀과 같은 위약이 된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그 대상에 생명을 부여하여 사랑하고 소통하고 그 세상이 전부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참으로 진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진부함과 안락함이 배척당하는 시대에, 날카롭고 신박한 길에서 잠시 벗어나 주저앉아 반나절쯤 시간을 진부하게 낭비할 수 있는 자유를 느껴본다. 낯선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가련한 어린 영혼들은 현실의 장막을 걷어내면 나에게 언제나 보이는 풍경이다. 그 풍경 속에서 어딘가 마땅한 곳을 찾게 되면 정착하고 어딘가 어떻게든 서식하게 되겠지.
직박구리라는 새의 이야기는 이 전시의 또 다른 재미난 축이다. PC를 켜서 새로운 임시폴더를 생성하며 붙여지는 폴더명 중 하나인 ‘직박구리’는 사실 2002년 가을 우리나라에 길 잃은 새로 발견돼 정착하여 이제는 텃새로 서식하게 된 종이라는 글을 읽었다.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정체성과 소속감의 문제를 고민하는 작가들에게 이 새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새로운 환경에 발을 딛는 존재를 상징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직박구리의 특성을 염두에 두며 각자 수집해온 다양한 레퍼런스를 연결하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주제를 재구성해보는 전시가 되리라 생각한다. 단순히 개인의 작업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각자의 비밀노트 속 아이디어가 집약된 이 공간에서 관객은 각자의 경험과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형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직박구리의 여정은 우리가 각기 다른 환경에서 겪는 길 잃음과 정착의 과정을 상징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생추어리’를 찾아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여정의 한 가운데이니까.
몰리킴
개인전 11회
수상
2024/2019 ASYAAF 히든아티스트 선정
2020 Art Gallery Ring 해외 온라인전시공모 “Crystal Award Of Merit” (6위) 수상
2015~2018 강남미술대전 특선, 대한민국회화대전, 구상전, 힐링미술대전 등 다수 입상
Sanctuary: Toys no.37 - 몰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