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II - 김잔디

6,000,000원
작품명 : 4월 II
캔버스에 유채
73 x 117 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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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 지나고까지 To the Autumn Equinox and Beyond

 

 만추, 우수, 추분. 얼마 전부터 절기를 지칭하는 두 글자의 함축적인 한자어에 매료되어 이를 따라 그림의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다. 곡우, 입추, 소설 등 여전히 설레는 이름들은 앞으로의 작품들을 위해 아껴두고 있다. 전시의 제목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춘분 지나고까지>에서 따온 것이다. 소설가가 말 그대로 춘분 지나고까지 쓴 글들이라 붙인 이름이라는데 이 전시 역시 추분을 막 지나 시작하는 점을 고려했다. 우수雨水로 시작한 신작 아홉 점 역시 추분秋分으로 끝났다.

 

  지난 긴 겨울을 소세키의 소설 전집을 읽으며 버텼다. 짧은 기억력 탓인지 얼핏 비슷한 주인공들과 삼각관계의 서사들은 희미하게 뒤섞여버렸다. 대신 어느 책이든 적지 않게 할애한 섬세하고 정제된 계절의 묘사는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우리의 문인산수화도 그러하지만 하이쿠와 우키요에, 소세키의 소설과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유독 일본고전문화에서 일관되게 느껴지는 계절의 정취와 쓸쓸한 모습은 언제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덧없고 쓸쓸한 비애를 일본적 미학이론으로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라고 한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이 복잡한 미학용어는 사물이나 상황(특히 계절의 변화와 인생의 상황들)에 접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애절한 느낌, 적막감과 슬픔을 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용어는 최근에야 알게 된 것이고 신작들이 모두 그의 구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언제나와 같이 가을은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처럼, 언젠가 내공이 된다면 겨울은 추사의 세한도처럼 그리고 싶다. 그밖에도 캄캄한 빈 캔버스 앞에서 등대가 되어준 많은 옛 이름들이 있다. 다만, 과거 집과 도시의 쇠락한 모습을 그린 작업들에서 꾸준히 표현했던 모순된 감정을 나중에 운하임리히unheimlich, uncanny라는 단어에서 발견했듯 모노노아와레 역시 그동안 좇아왔던 비애의 감정을 잘 설명해준다. 감탄과 경외, 인간과 자연의 가장 깊은 부분에서 일어나는 순화된 숭고한 감정,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깊고 애절한 이해 등등 이 용어의 설명을 들여다볼수록 그것은 서양의 미학개념인 숭고나 운하임리히와 닮았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절절한 감정이라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작업의 동기가 되겠다. 특별히 이 시절을 지나는 누구나 한산한 거리와 예전 같지 않은 풍경을 보며 한번쯤은 그 적막과 슬픔에 공감할 것이다.  

 

 겨울부터 해당 계절을 따라 그렸는데 봄을 다 그리기도 전에 여름이 왔다. 한 계절은 그것을 제대로 통과해보기도 전에 덧없이 끝나지만 언제나 겨울 다음에 봄이 올 거라는 당연한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영원한 풍경은 없다는 것을 절감한 후 이조차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본다.

 

김잔디

 

 

+++

 

 

김잔디의 풍경화 속 식물의 시간에 대하여

 

 

이윤희(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

 

 

김잔디가 그려내는 풍경은 다 다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질적으로 모두 닮아 있다. 그의 작품들은 보는 이에게 어떤 정조를 전달한다. 사람이 더 이상 거주하지 않는 것 같은 쇠락한 집과 건물이 철거된 지역에서 우후죽순 자라는 잡초들의 광경, 거대한 고가의 아래 그림자가 드리워진 지역... 이 풍경들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조에 대해 작가는 “낯선 친숙함(Das Unheimlich)”이라는 프로이트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중이다. 과연, 이 풍경들은 낯익으면서도 낯선, 처음 보는 것이면서도 기억 속 어디선가 튀어나온 것만 같은, 그리운 것 같기도 하고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어떤 것들이다. 그는 어느 지역에 거주하건, 그것이 한국이건 외국이건, 서울이건 지방이건 간에 이러한 풍경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그리고 있다.

우리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그림 같은 풍경’이라 서술하고 이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여서 멋진 광경에 대해 마찬가지로 그림 같다는 의미인 ‘picturesque’라는 형용사를 사용한다. 그런데 김잔디가 선택하고 그려내는 풍경들은 보고 또 보고 싶은 ‘그림 같은 풍경’의 유형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대척점에 서 있다. 그가 보여주는 광경은, 실제로 삶 속에서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를 가정하면, 주목을 끌기보다는 스쳐 지나가기 쉽고, 더 바라보고 싶기보다는 시선을 돌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산골 어느 마을에서 더 이상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집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문을 두드려 보지 않아도 그 집이 빈 장소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 그것을 깨닫는 순간 알 수 없는 섬뜩함에 휩싸여 한시 바삐 그 장소를 떠나고 싶어지는 것, 사람이 살던 흔적이 소거된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로 번성한 식물군들을 바라보며 대책이 안서는 낭패감을 느끼게 되는 일, 대체로 이런 기분, 이런 감정이 그러한 풍경 앞에 선 인간의 반응일 것이다. 김잔디가 선택하는 풍경은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 실제로 만나면 이삼초 이상 바라볼 일이 없는, 한 순간 눈을 두었다가도 이내 의식적으로라도 발길을 돌리게 될 풍경들에, 김잔디는 사로잡힌다.

김잔디의 풍경은 과거의 몇몇 작품을 연상시킨다. 즉각적인 연상이라기보다는, 이런 기분을 언제 느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차차 떠올려지는 작품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 일반적인 풍경화로 포장되어 있는, 그러나 들여다볼수록 마음이 서늘해지는, 주목을 끌만한 별다른 요소들이 없지만 눈을 떼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아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의 <죽음의 섬>(1886)과 폴 세잔의 <목맨 사람의 집>(1872), 이 둘은 서로 다른 기법과 의도를 가진 작품들이지만, 이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는 김잔디의 풍경화가 지향하는 바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막한 바위섬을 묘사한 뵈클린의 작품과, 어디에나 있을 듯한 언덕 중간의 집을 그린 세잔의 작품에는, 그러한 광경을 선택한 화가들의 눈을 사로잡은 특별한 지점이 있다.

세잔의 <목맨 사람의 집>은 이전까지 어두운 주제와 화면을 유지하다가 인상주의적 밝은 화면을 최초로 시도한 작품인데, 아름답지도 않고 별다른 특징도 없는 이 집이 최초로 세잔의 눈을 끈 것은, 그것이 목맨 사람의 집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냄새가 나는 빈 풍경, 그러나 그것을 밝게 감싸는 대기, 그리고 전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묘사, 이러한 지점들이 김잔디의 작품에서 세잔을 떠올린 이유이다.

뵈클린의 <죽음의 섬>은 김잔디가 베니스 여행을 통해 실제로 보았던 인공묘지섬을 묘사했던 작품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뵈클린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을 완성한 이후에 발견했다. 섬이라는 소재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작품의 정조, 분위기의 형성이다. 뵈클린의 작품에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요소는 음울한 대기와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뒷 모습의 인물들 등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것은 바위섬 한가운데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식물의 존재이다. 무덤가에 심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숲을 이루어 섬 자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곳으로 만들고 있다. 검은 나무들이 가득 찬 숲은 왜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김잔디의 작품 속에서 동일하게 제기된다.

대개 건축물이나 그 일부의 잔해를 포함하고 있는 김잔디의 풍경들은 더 이상 돌보아지지 않고 세상에 내던져진 것처럼 보이는 대상들이다. 인간은 자신들 둘러싼 풍경을 스스로에 대한 보호와 편리의 목적으로 구축하고 정비하며, 그렇게 만들어졌던 환경과 건축물은 일정 시기가 지나고 나면 버려지거나 용도 폐기된다. 그렇게 인간이 떠난 장소에 서서히 발을 뻗어 오는 것은 어김없이 식물들이다. 벽돌과 시멘트로 이루어진 건축물들과 그것을 지어 올리는 인간의 힘에 비할 때 식물은 너무도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요소를 더하면 식물들이 보여주는 생명력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다. 김잔디가 그려내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건축물들은 대개 넝쿨 식물들에 의해 장악되거나 예기치 않은 형태로 자라난 나무들이 입구를 막고 있다.

유용한 쓰임새를 잃고 녹슬고 쇠락해가는 건물들은 쉽게 인간의 삶의 여정과 유비 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김잔디는 작품 속에 등장시키는 등장하는 균열이 가거나 색이 바래 얼룩진 건축물들을 묘사하면서 그에 부여하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들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유기적인 자연의 모습과는 대비를 이루거나 그에 사용된 각종 광물질들이 자연을 긁고 찌른다. 그러나 김잔디는 이러한 부분을 작품 속에 드러내면서도 그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드러내지 않는다. 건축물이나 건축의 잔해에 대한 묘사는 유용성의 상실, 더 정확하게는 유용성의 상실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식물들인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을 크게 자극하는 요소로서의 식물은, 건축물의 쇠락을 빠르게 하고, 동시에 건축물을 감싸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는 모습이다. 식물들은 인간의 산물을 껴안고 받아들이고, 결국은 다시 땅 속으로 스며들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식물의 형태로 외화되어 있으나, 이는 인류에게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땅에 대한 관념으로서의 지모신(地母神)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생명이 그곳에서 나와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땅의 인격화된 형태로서의 어머니 신은 두렵기도 하며 그립기도 한,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상징하는 존재이다. 죽음을 맞는 인간, 그리고 버려진 인간의 산물은 마침내는 땅에 자신의 몸을 열어 그것과 완전히 하나가 될 것이다. 다만 김잔디의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지점은, 이 이 태어남과 죽음의 시간 사이, 인간이 만든 것들이 유용성을 잃고 쇠락해가며 식물들과 얽히는 과정에서 땅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 집요한 분석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말은 앞서 말했듯이 일차적으로는 실제의 풍경이 꽤 아름다답다는 찬탄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실제의 풍경에서 예술작품을 떠올린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면, (적어도 나에게 있어) 김잔디의 풍경은 ‘그림 같은 풍경’이 확실하다. 그의 작품을 보고 난 다음부터는 어느 장소에 가건, 김잔디의 작품 속에 나올 것 같은 장소, 그러한 건물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자연이 예술을 모방하는 것처럼.

 

 

 

오픈스튜디오12 (2016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 도록)에서 발췌

 

 

 

 

김잔디

 

개인전 (총 11회)

2021 콘크리트 비가, 서울시청 하늘광장갤러리, 서울

2020 추분 지나고까지. 스페이스 엄, 서울

2018 바람이 불어오는 곳, KSD갤러리, 서울

2017 도시의 언덕에서, 트렁크갤러리, 서울

2016 이아생트Hyacinthe, 갤러리 도스, 서울

2014 낯선 친숙함Das Unheimliche , 알떼에고, 서울

2013 소리 없는 섬,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서울

2010 Sense of Place, 갤러리킹, 서울

2009 제5회 젊은작가 공모당선전, 국민아트갤러리, 서울

2008 There is No Home, Stables Gallery, London

2005 한남방문기, 아트스페이스 휴, 서울

 

주요 그룹전

2023 까미노스, 수애뇨339, 서울

2021 서리풀 Art for Art 대상전, 한전아트센터, 서울

2019 그대는 나의 봄이 되었다, 스페이스 이색, 서울

2017 출구전략, 스페이스엠, 서울

2016 인트로전,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고양

2016 새로운 사유, 쉐마미술관, 청주

2015 소마 드로잉_무심(無心), 소마드로잉센터, 서울

2015 부유하는 집들, 닥터박 갤러리, 양평

2014 오늘의 살롱, 커먼센터, 서울

2013 이계원. 김잔디2인전, 스페이스15번지, 서울

2012 Night Garden, 갤러리 온리, 서울

2012 Awakened Space, 갤러리 아우라, 서울

2010 직관, 학고재, 서울

2010 서교육십, 상상마당, 서울

2009 김잔디, 이혜승2인전, 갤러리 킹, 서울

2008 08Salon, Vine, London

2008 RA Summer Exhibition, Royal Academy, London

2006 중앙미술대전, 예술의 전당, 서울

2005 동작프로젝트When we get there, 아트링크, 서울

 

기타

 

2016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입주작가

2015 울산 모하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2013 소마미술관8기 아카이브 등록작가

2012 캔 파운데이션 오래된 집 레지던시4기 입주 작가

2008 Collection Artist 선정 작가, University of Arts London

2006 중앙미술대전 선정 작가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청 박물관과

경기문화재단

을지재단

University of Arts London

캔 파운데이션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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